박희영은 의지가 강한 선수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라운드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는 27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몸이 아파도 기권한 적이 없다"며 "골프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이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헤븐 마스터즈 2라운드를 마친 뒤 은퇴식을 가졌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다"는 박희영은 "앞으로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할 때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은퇴를 했다고 필드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힘들긴 하겠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끔 대회에 나서고 싶다"고 여운을 남겼다.

박희영은 2004년 전국구 스타가 됐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KLPGA 투어 하이트컵 여자오픈(현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두각을 나타냈다.
2005년 프로 전향 이후 KLPGA 투어에서 4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3승을 기록했다.
2005년 KLPGA 투어 신인왕에 올랐고, 2008년부터는 주로 미국에서 뛰었다.
박희영은 2019년 결혼했고, 두 살 된 아들이 있다.
골프와 육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는 11월에 둘째 딸을 출산할 예정이다.
박희영은 "둘째 아이를 가지면서 은퇴를 생각하게 됐다.
첫째를 키우면서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대회에 출전하는 생활이 쉽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나만을 위해 살 수밖에 없는 게 투어 프로의 생활이다.
이제는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할 때라고 느꼈다"고 은퇴 배경을 설명했다.
은퇴경기 이후 현재의 솔직한 심정을 물었다.
"아직도 시원섭섭하다.
은퇴를 했는지 실감이 나진 않는다"고 했다.

20년 선수 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90점을 주고 싶다.
성적을 떠나서 20년이 넘도록 선수 생활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박희영은 "한 직장에서 20년을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승수를 쌓은 것이 중요하진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뛴 것은 칭찬해주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박희영에겐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바로 이수그룹이다.
시작과 끝을 함께한 특별한 인연이다.
2005년 당시 그룹 계열사인 이수건설이 운영하던 '브라운스톤' 골프팀을 통해 박희영을 첫 공식 후원 선수로 영입했다.
2018년에는 메인 스폰서 계약을 했고, 2023년에는 계약 기간을 2025년까지 연장하며 약 20년에 걸친 장기 후원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처음 클럽을 잡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미국에서 돌아올 때 후원사가 없다고 하니까 무조건 지원해 주셨다"며 "평생 잊지 못할 은인"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가장 기억에 남은 대회는 2020년 LPGA 투어 ISPS 한다 빅 오픈이다.
선수 생활 마지막 우승이다.
박희영은 "ISPS 한다 빅 오픈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제 우승이 힘들다 싶어서 거의 포기했을 때 찾아온 우승이었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면 나이를 떠나서 우승할 수 있다고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경험"이라고 말했다.
또 2013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준우승도 꼽았다.
골프의 성지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펼쳐졌다.
"역사적인 골프장에서 2위를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자랑했다.

박희영은 동생 박주영과 자매 골퍼로 유명하다.
동생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자신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이다.
"동생은 늦게 운동을 시작했다.
박희영의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그는 "미국에도 Q스쿨을 통과해 1년 뛰다가 국내로 돌아갔다.
언니한테 부담을 주기가 싫어서 한국으로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언니로서 미안하기도 했다.
지금은 육아도 도움을 주고, 친한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고 웃었다.
박희영은 엄마 골퍼의 복지에서 신경을 쓸 생각이다.
그는 "KLPGA 투어에는 엄마 골퍼가 많지 않다 보니까 목소리가 작았다"면서도 "엄마 골퍼가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은 점차 향상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미국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30대 선수들의 설 자리가 없는 국내와는 다르다.
그는 "골프는 60대까지 칠 수 있는 스포츠다.
선수들이 오래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박희영은 이제 새로운 길을 걷는다.
골프 지도자가 될 전망이다.
"지금도 골프에 대한 열정만큼은 변함이 없다.
아직도 골프장에 오면 설렌다.
못 치면 속상하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는 박희영은 "은퇴한 뒤에도 골프와 떨어져 살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기쁘고 때로는 어려웠던 순간들이 저를 성장시켰고, 앞으로는 후배 선수들을 돕고 골프 대중화에 기여하는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한다"고 했다.

박희영은 골프 저변 확대와 꿈나무 육성에 집중할 예정이다.
"내가 경기만 했지 누굴 가르쳐본 적은 없다.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다"는 그는 "어린 선수들한테 내가 오랫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
나 역시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뛰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세계 투어를 다니면서 최고의 코치들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어린 선수들이 힘든 시기를 줄이고 더 행복하게 골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노우래 기자 golfm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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