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그룹, 10년 이상 조건없는 거액 후원 최고액 상금대회 만들어
에이원CC, 총 12년간 코스 무상대여로 남자골프 발전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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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0년째 KPGA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에이원CC 18홀 모습. 많은 명승부가 펼쳐지는 홀이다. /KPGA |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오늘(6월12일)은 대한민국 골프사에 길이 기억될 아주 특별한 날이다. 67년 전인 1958년 오늘, 지금은 서울어린이대공원이 조성돼 있는 광진구 능동(옛지명 군자리) 일대의 ‘서울칸트리구락부’(서울CC)에서 제1회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가 열린 것이다. 연덕춘 신봉식 박명출 등 3명만이 프로골퍼로 활동하던 시기, 프로골퍼를 양성할 목적으로 개최된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골프 대회다. 내셔널 타이틀인 한국오픈도 같은 해 창설됐지만 3개월 정도 늦은 9월에 개최돼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가 공식 1호다. 당시에는 협회가 결성되기 이전이라 골프장 주관으로 대회가 진행됐고, 10년 뒤 KPGA(한국프로골프협회)가 만들어지면서 협회로 이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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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GA 원로 프로 한장상. KPGA선수권만 일곱 차례 우승했으며 일본오픈 우승 및 마스터스에 출전한 최초의 한국인이다./KPGA |
창설 첫 대회 우승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골퍼이자 협회 2대 회장을 역임했던 연덕춘으로 당시 우승 스코어가 18오버파 306타.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기록이지만 그래도 2위와의 격차가 무려 16타로 최다타수차 우승의 역대 2위 기록일 만큼 압도적 실력(?)으로 정상에 올랐다. 초창기 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언더파 기록으로 우승한 이는 한장상으로 7회 대회인 1964년에 6언더파 282타로 정상에 올랐고 이 때 2위와 18타차를 보여 역대 최다타수차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한장상은 선수권대회에서만 4년 연속 우승(1968~71년) 포함 7차례나 우승하는 등 초창기 독보적 존재로 군림했고 한국인 최초 일본오픈 우승(1972년) 및 한국인 최초 마스터스 출전(1973년)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개인 통산 43승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최상호도 선수권대회에서만 여섯 차례 정상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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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투어 통산 43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최상호./KPGA |
골프장도 몇 개 안되던 시기라 창설 초기 1회부터 10회 대회까지는 서울CC에서만 줄곧 열렸고(한국오픈은 첫 대회부터 15회 대회까지 서울CC에서만 개최됐슴) 이후 뉴코리아, 태릉, 관악, 안양CC 등을 거쳐 78년 이후에는 한양CC가 아홉차례 대회를 유치한 바 있다. 지난해까지 단 한차례도 거르지 않고 총 67회가 치러지는 동안 모두 27개의 골프장에서 선수권대회가 열렸다.(한국오픈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개최)
이러한 아련한 역사를 안은 채 고희(古稀)를 목전에 둔 KPGA선수권대회가 오는 19일부터 나흘간 경남 양산 에이원CC에서 68회째 대회가 열린다. 아도니스그룹(회장 정희자)이 남자 골프의 발전을 위해 59회 대회(2016년) 부터 임대료 없이 무상으로 골프장을 대여, 올해로 10년째 에이원CC에서 열리고 있다. 공식 타이틀은 ‘제68회 KPGA선수권대회 with A-ONE CC’이고 총상금은 국내 남녀 투어 최고액인 16억원(우승상금 3억2,000만원)이다.
이렇듯 KPGA선수권대회가 지금은 역사와 전통, 상금 규모와 개최 골프장의 수준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메이저 대회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사실 1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형편이 그리 녹록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선수권대회가 협회 레거시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스폰서 입장에선 투자 대비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고 판단함으로써 후원사를 구하기가 일반 대회보다 훨씬 어려웠던 것이다.
따라서 2005년부터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상금은 3~5억원으로 중하위권 수준이고 스폰서는 동부화재, LIG, 코리아CC, NH농협, 금호아시아나, CT&T, 대신증권, 해피니스CC, 동촌CC 등으로 2년 조차 지속되지 못한 채 해마다 바뀌었고, 골프장 역시 비에이비스타, 해운대, 코리아, 베어크리크, 아시아나(2009~2011년), 해피니스, 동촌CC 등을 전전하는 메이저답지 못한 형편이 지속됐었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 풍산그룹과 에이원CC라는 두 분의 ‘키다리 아저씨’가 전격 등장해 선수권대회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현재의 명실상부 최고의 대회로 발전된다. 일찍이 골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풍산그룹 류 진 회장께서 2014년부터 매년 조건없이 거액을 후원함으로써 선수권대회 상금 10억원 시대를 열 수 있었고 위에 언급한 바, 2016년 제59회 대회 부터는 에이원CC가 공동 후원사로 참여함으로써 날개를 달 수 있었다.
풍산그룹의 조건없는 지원은 계속 규모를 키워 65회 대회인 2022년 부터는 총상금이 15억원으로 증액됐고 지난해 부터는 16억원으로 남녀대회를 통틀어 최고액 대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코스 임대료가 일반적으로 대회 기간 중의 매출액과 연동해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에이원CC 역시 올해까지 10년간 50억원에 가까운 엄청난 금액을 선수권대회 및 남자골프 발전을 위해 쾌척한 셈이다. 에이원CC는 2027년 70회 대회까지 총 12년간 같은 조건으로 계약이 되어 있어 그럴 경우 초창기 서울CC와 함께 가장 많은 12회씩 선수권대회를 치른 골프장으로 기록되게 된다.
한국오픈이 코오롱이라는 재벌기업의 든든한 후원과 함께 그룹 소유의 우정힐스CC에서 2003년 이후 무려 22년간 안정적으로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내셔널타이틀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한국오픈은 우정힐스 코스 공사로 인해 올해만 남춘천의 라비에벨CC 듄스코스에서 개최됐다)
특정 골프장에서 장기적으로 대회가 개최되자 자연스레 해마다 좀 더 철저한 준비를 함으로써 선수들로 하여금 수준높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여건이 제공돼 왔다. 이에 따라 2022년에는 에이원CC가 투어 프로들이 뽑은 ‘베스트 토너먼트코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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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프로골프 역사상 먼데이 퀄리파잉 통과자 중 유일하게 본 대회에서 우승한 김성현. 현재는 PGA투어에서 활동 중이다./KPGA |
에이원CC에서 펼쳐진 지난 9년간 대회 중 인상적인 명승부를 몇가지 소개한다.
우선, 에이원CC 첫 대회인 2016년 59회 대회에서는 박준섭이 첫날 10언더파 62타를 몰아치며 3라운드까지 선두를 질주, 생애 첫 우승을 목전에 둔 바 있으나 많은 비가 내린 최종 라운드서 박준섭은 2타를 줄이는데 그친 반면, 김준성이 악천후 속에서 무려 7타를 줄여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1타차 대역전극을 펼치며 생애 첫 승의 감격을 안았다.
두번째는 2020년 제63회 대회의 김성현. 이 대회는 해마다 15장의 와일드카드 중 7명은 추천 선수로, 나머지 8명은 먼데이 퀄리파잉을 통해 본 대회 출전 기회를 주는데 김성현은 먼데이를 8등으로 턱걸이 통과한 뒤 단숨에 우승으로 내달아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라 ‘무관중’으로 대회가 열렸고 역대 가장 어려운 코스 세팅으로 평가됐는데 김성현은 2라운드 5언더, 최종라운드 3언더파를 기록, 합계 5언더파 275타로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이 스코어는 에이원CC에서 열린 아홉차례 대회 중 유일하게 한자리 수 언더파 우승기록이기도 하다 김성현은 우승 후 과감하게 PGA투어에 도전해 성공했고 그간 1, 2부를 오가다 내년에는 다시 1부 투어 승격이 확실시 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 번째는 2022년 65회 때의 신상훈. 2라운드 까지 1언더파로 컷오프를 간신히 통과한 신상훈은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 3라운드에서 역대 대회 최저타 타이인 10언더파 61타로 단숨에 선두로 올라선 뒤 최종 라운드도 6언더로 마무리, 합계 17언더파 267타로 우승했다. 이틀 동안 무려 16타를 줄이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KPGA선수권대회는 다른 대회와는 달리 기간 상관없이 역대 챔피언들에게 출전 기회를 부여한다. 이에 따라 간간이 ‘추억의 스타’들이 출전해 갤러리들을 즐겁게 한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최윤수, 이강선 등 원로 골퍼들이 이따금 모습을 보인 바 있고, 올해도 신용진, 김종덕 등 예순을 넘긴 노장들이 출전해 호흡을 함께 할 에정이다.
올해는 과연 어떤 명승부가 펼쳐져 갤러리들의 환호를 받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