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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막을 내린 프로배구 남자부의 가장 큰 뉴스는 최대어로 꼽힌 임성진의 KB손해보험 이적이었다.
한국전력 소속으로 ‘수원 프린스’로 불리던 임성진은 총액 8억5000만원(연봉 6억5000만원+옵션 2억원)의 조건을 받으며 ‘의정부 프린스’로 탈바꿈했다.
반면 이로부터 사흘 뒤인 지난달 24일 막을 내린 프로배구 여자부의 가장 큰 화제는 최대어 이다현의 흥국생명 이적이 아니었다.
어느 팀에 가도 능히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다재다능 아웃사이드 히터 표승주의 FA 미계약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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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 1992년생으로 30대 초반으로 3~4년은 충분히 전성기 기량으로 뛸 수 있는 선수다.
팀의 필요에 따라 공격적인 역할에 방점을 찍는 토종 주포 역할도 해낼 수 있고, 2024~2025시즌 정관장에서처럼 수비와 리시브 등 궂은일도 도맡아 처리해낼 수 있다.
여자부 7개 구단 어디에나 필요한 하이브리드 유형의 아웃사이드 히터기에 원 소속팀 정관장 잔류 혹은 수도권 한 팀(흥국생명)으로의 이적이 24일 KOVO의 FA 시장 마감 공시에는 나올 줄 알았건만...
그 결말은 미계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미계약 엔딩’이었다.
그리고 표승주는 자신의 SNS를 통해 현역 은퇴를 공식화했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뛰던 선수가 FA라는 제도 틀에 의해 떠밀려 은퇴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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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을 짤 때만 해도 ‘은퇴 여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는데...여행에서 마음의 응어리과 어깨의 부담을 다소 덜어낸 표승주를 지난 6일 용인 기흥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웃으며 카페에 들어선 표승주였지만, 다소 핼쑥해진 얼굴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엿볼 수 있었다.
표승주에겐 이번 FA가 네 번째였다.
사실 표승주는 IBK기업은행과 재계약을 맺은 지난 세 번째 FA가 자신의 마지막 3년이라고 생각하고 배구를 했다.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해내는 역할을 부여받으면서 계약 첫 해였던 2022~2023시즌에 529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500점을 넘어서며 큰 성장세를 보여줬다.
표승주는 “그 전까지만 해도 이번 3년만 하고 배구를 그만해야지 했는데, 지난 3년간 배구를 하면 할수록 늘어간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목표를 수정했다.
이번 FA 3년이 내게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한 번 더 해보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관두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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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024시즌에 IBK기업은행에서 뛰면서 생겼던 여러 일들, 그리고 IBK기업은행이 2024~2025시즌을 앞두고 이소영을 FA 영입하는 과정에서 보호선수에서 제외돼 보상선수로 정관장으로의 합류 등이 겹쳤다.
그럼에도 표승주는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메가와 부키리치라는 최고의 ‘쌍포’가 있는 상황에서 표승주는 수비와 리시브 등 궂은일에 매진하면서 팀 승리만을 위해 뛰었다.
자연히 개인 성적은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득점도 434점에서 277점으로 떨어졌고, 리시브 범위도 넓어지다 보니 리시브 효율도 35.16%에서 25.49%로 약 10% 가량 하락했다.
표승주는 “팀 승리를 위해선 제가 공격보다는 수비적인 역할을 더 해야한다는 상황을 100% 받아들이고 뛰었다.
시즌 초반만 해도 ‘이겼으니 됐다’라는 마음이었지만, 갈수록 팀은 승리해도 마음은 불편했다.
내가 뭔가 팀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마음에,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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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승주를 잔류시키고 싶었던 정관장은 표승주에게 ‘그럼 너를 원하는 팀을 구해와라’고 했지만, 선수 본인이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프로배구에서도 에이전트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표승주는 “제가 다른 구단에 연락하거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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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승주 영입에 관심을 표한 흥국생명과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나 했지만, 정관장은 처음엔 구체적인 선수 제시도 하지 않았다가 2024~2025시즌 들어 흥국생명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선수를 요구했다.
사실상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표승주를 정말 잔류시키고자 했다면 정관장에서 구체적인 조건 등을 포함한 계약 제시가 있어야 했지만 없었다.
본 기자는 여러 루트로 취재한 결과 ‘표승주가 정관장으로부터 2024~2025시즌에 받은 연봉,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얹어진 조건의 금액을 제시받았다’라고 배구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해 표승주에게 묻자 “협상 마지막 날까지도 금액 제시 등 구체적인 계약안 제시는 전혀 없었다”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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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가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제시하는 이유가 ‘금액 때문에 저러나’라는 인상을 줄까 싶어 먼저 제시하지 않았다.
나에겐 이번 FA 협상에서 돈은 우선 대상이 아니었다.
정말 제가 필요했다면, 알아서 챙겨주는 것 아닐까. 나를 정말로 원하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라면서 “이미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얘기한 상황에서 다시 정관장에서 뛰는 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협상 마지막 전날 ‘우선 계약을 하고,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다시 좀 트레이드를 찾아봐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요청했지만, ‘여기서 뛰는 게 아니면 어쩔 수 없다’라고 얘기가 나왔고, 결국 저는 미계약을 받아들이게 됐다”라고 자세한 내막을 들려줬다.
이렇게 표승주는 FA 미계약을 받아들이게 됐다.
용인=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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