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브라는 고질적인 약점은 있지만, 선수단에 있으면 쓰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마성의 클러치’ 능력을 지녔다.
긴박한 상황에서 해결사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력이 빼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 프로배구 페퍼저축은행의 ‘클러치박’ 박정아(32)가 V리그 여자부 통산 두 번째로 6000득점의 고지를 점령했다.
박정아는 12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현대건설과의 원정경기에서 12점을 올리며 페퍼저축은행의 세트 스코어 3-1 승리에 힘을 보탰다.
이날 경기 전까지 통산 5995점을 기록 중이었던 박정아는 3세트 12-10에서 현대건설 ‘카메룬 특급’ 모마의 오픈 공격을 블로킹해내며 6000점째를 채웠다.
이는 양효진(현대건설, 통산 7825점)에 이은 두 번째 6000점 고지 돌파다.
V리그 출범하고 8시즌째인 2011~2012시즌에야 V리그에서 뛴 박정아가 역대 두 번째로 6000점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데뷔 이래 한결같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일정 이상의 득점력을 선보였기에 가능했다.
그만큼 오랜 기간 주전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한 것의 ‘훈장’같은 기록이다.
2010년 여자 프로배구 6번째 구단으로 창단한 IBK기업은행의 창단멤버로 프로에 데뷔한 박정아는 신인 시절인 2011~2012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다.
김희진과 함께 ‘쌍포’를 이루며 챔프전 우승 3회(2012~2013, 2014~2015 2016~2017)를 일궈낸 박정아는 첫 번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자신의 재능을 김천으로 옮겼다.
당시만 해도 도로공사는 여자부 6개 구단 중 유일하게 챔프전 우승 경험이 없던 팀. 박정아는 그야말로 ‘우승 청부사’였다.
박정아가 FA 이적한 첫 해인 2017~2018시즌에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직행한 뒤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올렸다.
공교롭게도 그해 챔프전 파트너가 박정아의 친정팀인 IBK기업은행이었다.
2019~2020시즌을 마친 뒤 두 번째 FA 자격을 얻어 도로공사에 잔류한 박정아는 2022~2023시즌에도 도로공사에 또 한 번 챔프전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다.
우승 후 또 한 번 FA 자격을 얻은 박정아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막내구단 페퍼저축은행에 보수상한선이었던 7억7500만원을 보장받으며 광주로 옮겼다.
‘연봉퀸’에다 주장 완장까지 차면서 페퍼저축은행의 상징이 됐지만, 천하의 박정아도 페퍼저축은행의 ‘승점 자판기’ 신세를 바꿔내진 못했다.
이적 첫 해인 2023~2024시즌, 팀에 합류하기 전에 오랜 대표팀 생활로 손발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던 데다 새로 부임한 조 트린지 감독은 ‘박정아 사용법’에도 그리 능하지 못했다.
도로공사 시절엔 리베로 문정원, 리시빙 아포짓 문정원이 워낙 뛰어난 리시브 능력으로 박정아의 리시브 약점을 메워줬고, 박정아는 확실한 공격력으로 수비적 약점을 지워내던 선수였다.
그러나 페퍼저축은행에선 리시브 라인에 항상 서야했다.
2022~2023시즌 총 받은 리시브가 147개였는데, 2023~2024시즌 623개로 무려 4배 이상 늘었다.
이렇다 보니 자신의 공격력을 100% 발휘하기 힘들었다.
박정아의 지난 시즌 공격성공률 32.67%는 프로 데뷔 후 최저였다.
2024~2025시즌. 박정아 개인의 기록은 그리 나아지진 않았다.
공격 성공률 32.56%는 지난해보다도 더 떨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페퍼저축은행 전체는 달라지고 있다.
주장 2년차에 접어든 박정아도 코트 안팎에서 주장의 무게감을 견디며 선수단을 이끌고 있다.
수치만이 박정아가 페퍼저축은행에 끼치고 있는 긍정적 영향력을 모두 보여줄 수 없다는 얘기다.
12일 현대건설전에서도 ‘클러치박’다운 면모를 또 한 번 뽐냈다.
세트 스코어 2-1로 앞선 4세트. 페퍼저축은행은 22-24로 세트 포인트에 몰렸다.
한 점만 내주면 5세트로 가야하는 상황. 테일러의 연속 오픈 성공으로 승부를 듀스로 끌고갔고, 이한비의 서브득점으로 매치포인트를 따낸 페퍼저축은행. 다급해진 현대건설은 모마의 백어택을 선택했고, 이를 가로막아낸 것은 다름아닌 박정아였다.
박정아의 블로킹으로 페퍼저축은행은 팀 창단 첫 3연승을 달성했다.
지난 세 시즌간 한 시즌 최다승이 5승에 불과했던 페퍼저축은행은 벌써 8승(12패)째를 거뒀다.
이제 두 자릿수 승수는 확실시되며 내친김에 창단 첫 5할 승률(18승18패)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중심엔 ‘클러치박’이 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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