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건 것일까. 올스타전 없는 올스타 브레이크를 지내고 재개된 2024~2025 V리그 여자부 후반기 판도가 요상하게 돌아간다.
후반기 첫 주 6경기에서 5경기가 풀세트 접전으로 치러진 것도 모자라 6경기 중 4경기가 하위팀의 승리로 돌아갔다.
절대강자도 없고, 절대약자도 없는 판세가 계속 된다면 순위싸움의 양상도 요동칠 수 있다.
전반기를 ‘양강’으로 마친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이 비틀거리며 후반기를 시작한 게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다.
특히, 흥국생명의 부진은 충격적이다.
전반기를 14연패로 마감하는 등 전반기 1승17패에 그쳤던 GS칼텍스와 7일 여자부 후반기 첫 경기를 치렀는데, 풀 세트 접전 끝에 2-3으로 패했다.
사흘 쉬고 도로공사를 만나서도 풀세트 접전을 치러 또 한 번 패했다.
GS칼텍스와의 첫 경기야 투트쿠(튀르키예)의 대체 외인으로 영입한 마테이코가 V리그 코트 적응 문제로 3점에 그쳐 변명이 될 수도 있는 패배였다.
그러나 11일 열린 도로공사전에선 마테이코가 27점을 폭발시키며 제 몫을 다 했음에도 패했기에 더욱 충격이었다.
심지어 GS칼텍스가 7위, 도로공사가 6위로 하위권이기에 그 패배는 더욱 아팠다.
앞으로 더욱 험난한 여정이 예고되어 있는 흥국생명이다.
불안요소는 ‘배구여제’ 김연경의 부진이다.
전반기 김연경은 공격과 리시브에서 최고의 기량을 펼쳐보이며 흥국생명의 개막 14연승을 주도했다.
그러나 김연경은 후반기 2경기에서 득점은 16점, 21점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공격 성공률이 35.56%, 39.58%로 40%를 채 넘지 못했다.
다른 선수들이라면 준수한 수치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김연경은 전반기 공격종합 1위(47.02%)에 올랐던 선수다.
효율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선수인데, 2경기 연속 30%대 공격 성공률로 공격종합 1위 자리도 메가(정관장, 47.30%)에게 빼앗기며 2위(45.83%)로 내려앉았다.
여전히 최고의 활약을 펼쳐줘서 종종 잊곤 하지만, 김연경도 어느덧 30대 후반에 접어든 베테랑이다.
경기당 20~30개의 리시브를 받아가며 30~40개의 공격을 시도하다간 체력이 고잘될 수밖에 없다.
김연경을 갈아넣어서라도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해 챔프전 직행 티켓을 따내면 모르겠지만, 자칫 2위 아래로 내려앉아 봄배구를 진출하면 또 다시 지난 두 시즌과 비슷한 엔딩(2연속 챔프전 준우승)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김연경의 공수부담을 줄여줘야 하는 흥국생명이다.
후반기를 2연패로 시작했음에도 흥국생명(승점 45, 15승5패)이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은 이유. 현대건설(승점 43, 14승6패)도 덩달아 부진했기 때문이다.
후반기 첫 경기는 도로공사를 3-2로 꺾으며 승리로 장식했지만, 12일 페퍼저축은행전에서 승점 3을 따내면 선두 등극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1-3으로 패하면서 승점을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더욱 충격은 4세트에서 24-22로 앞서며 5세트로 승부를 끌고갈 수 있는 상황에서 연속 4실점하면서 경기를 내줬다.
자칫 팀 분위기가 처질 수 있는 충격적인 패배였다.
이 상황을 내심 즐기고 있을 팀은 정관장이다.
물론 정관장도 후반기 첫 경기는 GS칼텍스를 만나 졸전 끝에 간신히 3-2로 승리해 승점 3을 챙기지 못했다.
다만 연승행진은 ‘9’로 늘렸고, 승점 36(13승6패)로 1,2위와의 격차가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연승 행진을 더 이어간다면 ‘양강 체제’에 균열을 내며 ‘3강’으로 구도를 재편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후반기 최고의 ‘태풍의 눈’은 창단 후 세 시즌 동안 ‘승점 자판기’ 역할을 면치 못했던 페퍼저축은행이다.
9일 IBK기업은행을 3-2로 누른 데 이어 12일 현대건설을 3-1로 누르고 팀 역사상 첫 3연승을 수확했다.
고무적인 것은 올 시즌 외국인 선수 덕을 거의 보지 못했던 페퍼저축은행이 드디어 1인분 역할을 하는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게 됐다는 점이다.
테일러는 지난 9일 IBK기업은행전에선 공격 성공률 26%, 공격 효율 4%로 효율성 측면에선 크게 떨어졌지만, 후위공격 6개, 블로킹 7개, 서브득점 3개로 개인 통산 첫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해냈다.
12일 현대건설전에선 44.23%의 준수한 공격 성공률로 팀내 최다인 24점을 터뜨렸다.
전위에선 퀵오픈과 외발 이동공격을 구사하면서도 후위에서도 백어택을 일정 이상 터뜨려주면서 드디어 외국인 아포짓다운 면모를 발휘하는 테일러다.
여기에 이한비, 박정아의 토종 아웃사이드 히터진들도 공격에 힘을 실으면서 페퍼저축은행은 8승12패, 승점 24를 기록 중이다.
올 시즌 전까지 한 시즌 최다승이 5승에 불과했던 페퍼저축은행은 최초의 두 자릿수 승수는 물론 지금 기세라면 15승, 나아가 5할 승률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봄배구가 쉽지 않은 6위 도로공사와 7위 GS칼텍스도 후반기를 1승1패로 시작하며 ‘고춧가루 부대’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분위기다.
두 팀이 어느정도까지 힘을 내주느냐에 따라 여자부 후반기 순위싸움은 더욱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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