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외교’를 표방한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가 한국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 정황을 들어 ‘왜 미국이 한국을 지켜줘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었다.
주한미군에 복무한 경험이 있는 지한파(知韓派) 장성들이 “미군이 떠나면 북한이 1950년처럼 다시 한국을 침략할 것”이라며 만류했으나 카터는 막무가내였다.
1979년 6월30일 한국을 방문한 카터와 박정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운명의 정상회담이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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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6월30일 한국을 방문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박정희 대통령과 나란히 의전 차량에 탑승해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 |
이에 카터는 “내가 제안한 주한미군 병력 수준 변경은 안 된다는 완고한 주장에 깜짝 놀랐다”는 말로 운을 뗐다.
그는 “한국은 국민총생산(GNP)의 약 5%를 국방비로 쓰고 북한은 20%를 군사비로 지출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이 그토록 안보를 걱정한다면 주한미군에만 의존하려 하지 말고 더 많은 예산을 국방비로 써 군사력을 증강해야 할 것이란 뜻이라고 하겠다.
카터의 지적에 박정희는 남북한 체제 차이를 들어 반박했다.
그는 “만약 우리(남한)가 GNP의 20%를 국방비로 사용한다면 당장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카터는 “한국이 20%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를 잘 알겠다”며 어느 정도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냉랭한 분위기 속에 회담이 끝난 뒤 박정희는 카터 보좌진과 만나 향후 국방 예산을 GNP 대비 6% 이상으로 올리고 인권 상황 개선에도 계속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카터는 남은 임기 동안 주한미군 철수 논의를 중단하겠다는 약속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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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나토 정상들은 트럼프의 요구를 받아들여 회원국 국방비를 GDP 대비 5%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신화연합뉴스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처럼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방위 예산은 약 61조원으로 GDP의 2.3% 수준이다.
5%라면 132조원으로 지금보다 2배 이상 늘어나야 한다.
한국이 불응하는 경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실과 외교·안보 당국은 1979년 당시 한·미 협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교훈을 찾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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