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손끝에서 자란 불씨가 산불로 이어진다.
산불을 인재(人災)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다.
아무리 실수에 의한 산불이라도, 가해자로 특정되면 처벌을 받게 된다.
다만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은 경우 처벌 수위가 낮고, 기소되더라도 집행유예 수준에 그친다는 점에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산불이 사람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예방은 첫 번째 과제다.
여기에 산불의 환경적 요인을 애초부터 차단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원인별 산불 현황서 드러난 '나쁜 손'= 산불은 한순간 작은 실수로 발생하기 쉽다.
의성산불 역시 성묘객의 실수가 큰 화(火)를 불러온 것으로 결론 맺어지는 분위기다.
비단 의성산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간 대부분 산불은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5~2024년 발생한 연평균 산불 건수는 546건이다.
이를 원인별로 구분했을 때는 입산자 실화가 171.3건(31%)으로 가장 많고 논·밭두렁 소각 60.3건(11%), 쓰레기 소각 67.5건(13%), 담뱃불 실화 34.8건(7%), 건축물 화재 비화 34.1건(6%), 성묘객 실화 17건(3%) 등이 뒤를 잇는다.
별도 구분한 기타 항목은 177.5건으로 전체의 32%를 차지했다.
이 항목에는 원인 미상과 작업장 실화, 재처리 부주의, 방화 등이 포괄적으로 포함된다.
결국 실수든, 고의든 산불 대다수가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통계상으로도 입증된다.
이 때문에 산불 가해자(원인 제공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현재 산불 관련 처벌 규정은 '과실로 인해 타인의 산림을 태우거나, 과실로 인해 자기 산림을 불에 태워 공공을 위험에 빠뜨린 경우(실화)'라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대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실화의 경우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벌칙 자체가 낮아지기 쉽고, 그나마 기소가 되더라도 집행유예 처분에 그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를 두고 최근 정치권에서는 실수로 발생한 산불 가해자에게 최대 징역 5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산불 예방·진화에 주력 중인 산림당국= 산불의 연중·대형화 그리고 전국화로 산림당국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최근 산림당국은 산불 예방을 위한 원인별 대응과 진화자원 역량 강화에 무게 추를 더하고 있다.
우선 산림청은 지난해부터 농촌진흥청,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농촌진흥기관, 농업단체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농촌지역의 영농 부산물 파쇄를 지원하고 있다.
소각 산불이 원인별 산불통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소각 산불 발생 요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중이 반영됐다.
올해 계획한 소각 규모는 20만1000t으로, 지난해 16만6000t보다 21%가량 늘었다.
산불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진화자원을 개발해 현장에 실제 투입하기 시작한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예컨대 다목적 산불진화차와 산불지연제는 의성산불 현장에서 쓰임이 컸다는 후일담이 나온다.
의성산불 당시 다목적 산불진화차는 2000ℓ급 대용량 물탱크와 고성능 펌프를 이용해 이동용 저수조 등에 진화용수를 공급, 지상 진화인력의 지속적인 진화 활동을 뒷받침했다.
또 의료장비를 탑재한 다목적 차량의 특성을 이용해 의성군 단촌면에서 주민 10여명을 화마로부터 대피시키는 역할도 했다.
산림청은 올해 이 차량 16대를 산불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배치해 산불재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산불지연제는 나무 표면을 코팅해 불의 확산을 억제하고, 열을 식히는 등의 효과로 국가 주요 시설물의 피해 예방에 도움을 줬다.
의성산불에서는 송전탑과 사찰, 하회마을 등 시설물 보호와 방화선 구축, 지리산국립공원 화재 확산 억제 등에 주로 쓰였다.
의성산불 당시 현장에서 사용한 산불지연제 양은 총 134t 규모다.

◆"산불, 환경적 연결고리 단절이 중요"= 복수의 산림 분야 전문가는 산불 발생 요인과 산불 확산에 필요한 환경적 요인 간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도 짚었다.
임업인총연합회 박정희 회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미국의 산불 피해 사례를 보면 산림 밀도가 낮은 지역일수록 피해가 적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나무를 솎아베기해 숲의 밀도를 조절하는 것이 산불 확산을 저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배재수 전 국립산림과학원장은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선 불에 잘 견디는 활엽수림으로 수종을 전환하고, 이미 조림된 소나무림 안에는 활엽수 내야수림을 조성하는 등의 산불 확산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산불 상황에서 나무가 연료로써 산불을 키우는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와 관련해 고기연 산불학회 회장은 "최근 산불의 특징은 기후변화(고온·건조·강풍)와 지형적 요인(혹은 지역적 특징)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라며 "이는 사람이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산불 예방의 중요성을 높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산불은 '인재(人災)'로 불가항력적인 대상이 아니다"라며 "산불 발생과 확산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 요인'이 상호 결합하지 않도록 한다면 산불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산불의 환경적 요인 단절은 불씨가 산림으로 옮겨붙지 않게 '나쁜 손'을 예방하는 것과 동시에 선제적 수종갱신과 솎아베기 등으로 산불이 대형화되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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