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제가 큰 수술을 받았을 때도 병원에 찾아오셔서 금일봉까지 놓고 가셨습니다.
"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 작가의 제자인 중증 시각장애인이 전한 말이다.
연합뉴스는 20일 한강이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의 제자라는 김모(30대 중반)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보도했다.
한강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이 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개인정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김씨는 2011년 서울예대에서 한강 작가의 소설창작론 수업을 들은 뒤부터 사제의 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를 "주제넘은 일일 수 있지만 교수님께 보은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연락을 드렸다"고 밝혔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김씨는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뒤에도 책을 점자나 컴퓨터의 음성인식기능을 이용해 읽으며 학업을 이어갔다.
당시 한강 교수가 배려를 많이 해줘서 학교생활을 뜻깊게 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당시 한강 작가의 소설 '희랍어 시간'(2011년)이 출간됐을 때였는데, 교수실에서 그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연합뉴스에 "그 작품에도 나처럼 시각을 잃는 사람이 나온다"는 말도 했다.

장편 '희랍어 시간'에는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인 희랍어(그리스어) 강사와 말을 잃어버린 여자 수강생이 나온다.
작가는 두 인물의 만남과 교감을 통해 인간의 상실과 고통, 희망의 순간들이 담겨있다.

김씨는 또 2019년 자신이 사고로 중상을 입고 수술을 받은 직후 한강 작가가 병문안 온 일도 언급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데, 거리를 걷다가 난간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 발을 헛디뎌 4ｍ 아래로 추락하면서 크게 다쳤다"라며 "큰 수술을 두 차례 했는데, 내가 한강 교수님을 평소 존경하는 걸 알고 아버지가 연락을 취하셨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교수님이 병원까지 찾아오셔서 걱정해 주셨고, 나중에는 아버지께 금일봉까지 주고 가신 걸 알게 됐다.
정말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수술 이후 김씨는 하반신 마비가 된 상황이다.
그는 한강 작가가 서울예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김씨가 졸업한 뒤에도 둘은 사제의 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씨는 "교수님은 장애인 극단이나 연출가분들도 꽤 아시는데, 내게 '이런 데 일해보지 않겠느냐'며 일자리를 주선하시기도 했다"면서 "지난해 겨울에도 교수님이 초청해 주셔서 장애인들이 만든 공연을 서울 시내에서 함께 보고 식사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묻자 "기쁘고 또, '받을 분이 받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작품도 작품이지만 한강 교수님 그 자체가 노벨상을 받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늘 흔들리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좋은 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