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대상이던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며 절연을 준비하고 있다.
혈맹인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 속에서 경제·안보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대미외교, 대북정책의 돌파구를 동시에 찾아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출범했다.
1945년 이후 분단·전쟁·냉전(1.0), 1990년대 이후 화해·갈등의 교차(2.0)를 넘어 이재명 정부가 나아갈 '한반도 3.0 전략'을 3회에 걸쳐 진단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80)은 새 정부가 검토 중인 '통일부 명칭 변경안'에 대해 24일 "(북한이 규정한 남북관계에서) '적대적'이란 용어를 빼기 위해서는 통일의 개념을 잠시 선반에 얹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남북이 완전히 단절된 가운데 조금이라도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통일'을 굳이 앞세울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지금 통일을 얘기하면 자칫 상대에게 흡수, 굴복을 요구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정 전 장관은 이날 아시아경제와 전화인터뷰에서 통일부 명칭 변경에 대한 의견을 묻자 "바꿀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정 전 장관은 "(통일이란 목표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라며 "계절이 바뀌면 옷을 다시 꺼내입듯 나중에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2~2004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29·30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원로로,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 살아있는 역사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천명한 시점은 2023년 12월이다.
정 전 장관은 이듬해인 2024년 1월께 이종석 현 국가정보원장 등과 함께 사석에서 통일부 명칭 변경에 대한 의견을 일찌감치 나눴다는 사실을 인터뷰에서 밝혔다.
1969년 독일 빌리 브란트 정권의 '내독 관계성' 사례도 여기서 거론됐다고 한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통일전선부도 없애고 (김일성 주석 시절 세워진)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도 부숴버렸다"면서 "그런 북한을 상대로 그나마 협력적인 두 국가 관계로 나가려면, 북한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명칭으로 바꿔야 한다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국정원장은 '평화협력부'를 제시했으나, 정 전 장관은 '협력의 대상이 분명치 않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최근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언급한 '한반도부'란 명칭에 대해서도 정 전 장관은 "너무 지리적"이라며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정 전 장관은 다만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 공존 두 국가'로 가는 것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두 국가'라 말했다고 해서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한 것 자체가 상대를 정식 국가로 인정한 출발점"이라며 "남과 북은 국제법상으로 엄연히 두 국가로 살아왔고, 이재명 정부는 적대적이 아닌 우호적·협력적 관계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며 이는 곧 윤석열 정부 이전의 남북관계를 회복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자칫 '두 국가의 길'이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한 헌법 제3조의 취지를 거스르는 것 아닌가란 질문에 정 전 장관은 "그렇게 되면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한) 노태우 정권부터 잘못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헌법은 최종 달성할 목표를 규정한 것일 뿐, 지금의 협력적 남북관계 구상을 헌법과 연계해 논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최종 목표가 헌법에서 규정한 상태로 가는 통일일지언정, 중간 과정에서 북한이 싫어하는 단어를 쓰면 통일부가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9·19 군사합의 복원을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며 "비핵화 역시 먼 훗날의 목표로 두고, 핵 동결·군축을 위한 회담부터 여는 것이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북미정상회담을 빨리 열어야 한다"며 "북한의 대미·대일 관계를 적극적으로 권장해 외곽을 먼저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또 "바로 (정부 간) 대화 통로를 트려고 하지 말고, 과거 김대중 정부가 했던 것처럼 민간 교류를 앞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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