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2박 4일 방미를 계기로 한미 양국이 조기 정상회담과 안보·통상 패키지 협의에 공감대를 마련하면서 내달 1일로 예정된 관세 협상 시간까지 정부의 대응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국 정부가 기존 입장과 달리 한미 현안을 모두 묶어 협상에 나서겠다고 역제안을 한 만큼, 미국에 끌려가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다만 이번에도 한미 정상회담 시기를 좁히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을 방문하고 9일 오후 늦게 귀국한 위 실장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양측이 이견이 있더라도 동맹관계 발전과 신뢰 강화라는 큰 틀에서 합의를 위해 노력하고, 통상·구매·안보 관련 현안을 망라한 패키지를 고려해 협의를 진전시키자고 했다"면서 "조속한 시일 내 한미 정상회담을 열어 제반 현안에서 상호 호혜적인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촉진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루비오 장관은 공감을 표했다고 위 실장은 전했다.
위 실장은 이번 방미에서 루비오 장관을 포함해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무차관과 실무자들을 만나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미국 측이 상호관세 문제에서 자국의 상품 수출 등에 대한 장벽과 규제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우리 측이 먼저 대미 투자를 비롯해 미국 상품 구매 실적, 동맹으로서 안보의 가치 등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보면서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을 루비오 장관도 어느 정도 수긍했다는 의미다.
협상 테이블에 여러 현안을 함께 올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서 유리한 흐름을 끌어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위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을 보면 시종 관세와 비관세 장벽에 관한 이야기"라면서 "이외에 통상 전반과 투자, 미국산 구매, 국방 협력 등 다양한 영역이 있는데 포괄적으로 보면 다르게 협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런 방향으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맹의 엔드스테이트(최종상태)까지 시야에 넣고 협상하는 게 적절하지 않겠느냐', '이를 위해서는 빨리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전체 과정을 촉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면서 "약간의 공감대는 있는데 미국이 어디까지 반영할지는 협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 내각회의를 통해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대해서는 이번 방미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자국의 군사력에 드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면서 "(미국에) 군사비로 매우 적은 금액을 지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이 부담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의 9배에 이르는 100억달러(약 13조 7000억원)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재차 언급했다.
위 실장은 SMA와 관련해서는 논의한 바 없다면서도 "국방비 전체에 대해서는 늘려가는 쪽으로 협의는 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우리 기여가 많이 있는데 그 기여가 늘어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을 대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국방비를 증액하도록 했고,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도 유사한 요구를 하는 상황이다.
국방비 전체를 늘리라는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상호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도 한번 결정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SMA 논의는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이재명 정부 외교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한미 정상회담 조율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내달 1일 관세 협상 종료를 앞두고 7월 중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갈수록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위 시장은 "조속히 하자는 공감대는 있지만, 8월 1일 이전이다, 이후다라고 단정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진행되는 것에 따라 조정하려고 한다"고 했다.
'톱 다운' 방식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을 고려하면 한미 정상회담이 관세 협상의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이번 방미에서도 그 시기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위 실장은 정상회담 성사 여부와 관세 협상을 연동하는 관측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정상회담 시기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 일자까지는 가 있지 못한 상태"라면서도 "정상회담이 있느냐 없느냐가 모든 것의 관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역제안한 패키지 협상의 성과를 지켜보면서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협의와 회담은 하나의 흐름 속의 과정"이라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담판이라는 것은 잘 없다"고 부연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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