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농가 상당수 영세농…“농업 무너지면 부담 상당”
‘유치산업 보호론적’ 관점 탈피해 ‘경쟁력’ 확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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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하기 위해 전용기에 탑승한 모습. / AP·뉴시스 |
[더팩트ㅣ세종=정다운 기자] 정부가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현 30개월령 미만 수입) 완화 등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농·축산업의 현실과 ‘식량안보’ 차원 관점에서 개방이 어렵다는 의견과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 및 농·축산업의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서한을 통보하며 다음 달 1일부터 모든 수입품에 25% 상호관세(품목별 관세와는 별도)를 일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협상 기간은 2주밖에 남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은 연일 ‘비관세장벽’을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농·축산물’ 개방이다. 최근 미국과 무역 합의를 끝마친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 및 개방을 약속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 농·축산업의 현실과 ‘식량안보’를 고려하면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소고기와 쌀 시장 개방 등은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더욱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8∼2022년 농가경제 심층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농가의 74.7%(2022년 기준)는 70세 이상으로 상당수가 영세농이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우리 농업이 튼튼한 생산 기반을 갖췄다면, 약간의 챌린지(농산물 개방)가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지만, 우리 농업이 처한 환경을 보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는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식량안보 관점에서 지금은 내주기 어려워 보인다"며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부분은 식량 주권과 연결되고, 농업이 무너졌을 때 우리가 어느 정도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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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과 전국사과생산자협회 회원들이 미국산 사과 수입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
반면 소고기 월령제한의 경우 일부 한우 농가에 피해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제 피해는 미미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진다는 견해도 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OCED 국가 중 30개월령 이상 수입 제한을 유지하는 나라는 없어서 우리가 명분이 약한 게 사실"이라며 "수입을 하더라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표시를 명확히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미 미국산 소고기 1위 수입국(2024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 21만5161톤)이고, 한우와 대체성(고급화)을 고려하면 일본(2019년 공식 해제)의 사례처럼 생산자의 손해는 크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컨대 60세 농가에는 피해지원을 통해 조치하고, 개방 시 가격이 싸기 때문에 거부감 없는 소비자들한테는 선택권이 넓어져 좋은 면도 있다"며 "다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유지하면서 이것만 내주는 것은 손해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대책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또 국내 농·축산업이 ‘유치산업 보호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례로 2006년 스크린쿼터제 축소 추진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큰 반발이 있었지만, 현재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등 소위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을 휩쓸어 업계에서는 ‘스크린 쿼터제’ 폐지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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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소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 뉴시스 |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과거 칠레산 포도 수입 때도 그렇고, 우려와 달리 반대로 결과가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며 "예컨대 미국의 쌀이 우리나라 쌀과 비교해 경쟁력을 갖췄는지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경제 문제보다는 국민의 정서 문제가 어려운 부분"이라며 "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좋지만, 경쟁이 안되는 상황이라면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되짚어 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외부와 경쟁을 통해 발전을 도모하고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제고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되레 발전이 정체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 통계청의 ‘2022년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농사를 짓는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68세로 생산성 제고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밖에도 ‘자유무역 체제’의 무관세 시대가 끝났지만 단기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종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유무역 체제의 무관세 시대가 끝이 났지만, 어느 분야를 개방하는 문제를 두고 너무 단기적인 시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 같다"며 "지역 소멸, 청년 실업 등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임기응변식 대응은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danjung638@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