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25일 이사회서 엔무브 지분 매입 의결
2013년 이후 4번째 상장 도전 철회...與 상법개정안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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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이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의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SK이노베이션이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의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에 따른 자본시장 분위기 변화가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쪼개기 상장'을 비판하며 당선되면 상법 개정안을 즉시 공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25일 제6차 이사회를 열고 사모펀드 운용사인 IMM크레딧앤솔루션(ICS)이 보유한 SK엔무브 지분 30%를 다시 사들이기로 의결했다. 인수 시점은 내달 2일로, ICS가 보유한 SK엔무브 주식 1200만주를 8592억6000만원에 인수한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SK엔무브 보유 지분은 70%에서 100%로 늘어난다.
SK엔무브는 기유(산업용 윤활유) 시장 세계 1위 업체지만 상장과는 유독 거리가 멀었다. 앞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세 차례나 IPO에 도전했으나 성장성을 보여주지 못해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올해는 실적발표 컨퍼런스콜과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이어 네번째 IPO 도전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중복상장 논란에 제동이 걸렸다. 일부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은 SK온 등 SK이노베이션 자회사들의 영업손실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꾸준히 영업이익을 내온 자회사 SK엔무브가 별도 상장할 경우 모회사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거라는 우려를 표했다. 통상 모회사가 상장돼 있는데 자회사까지 상장해 중복상장이 되면 자회사 가치가 이미 모회사 주가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모회사 주가 하락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회사를 상장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과도한 중복상장과 주주이익 침해에 대한 기업의 무관심은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부른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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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25일 제6차 이사회를 열고 사모펀드 운용사인 IMM크레딧앤솔루션(ICS)이 보유한 SK엔무브 지분 30%를 다시 사들이기로 의결했다. /SK이노베이션 |
한국거래소도 지난 4월 SK엔무브 측에 "기존 주주에 대한 보호 방안을 강구하라"며 IPO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자본시장 분위기 변화로 결국 네번째 IPO 도전도 물거품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으로 취임한다면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즉시 공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4일 경기 부천시 부천역에서 열린 유세에서 "분명 우량주라고 해서 길게 보고 샀는데, 튼실한 암소를 내 눈으로 보고 샀는데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더니 송아지 주인은 남이다. 이게 우리나라 주식시장"이라며 "무슨 물적분할이니 자회사니 만들어 가지고"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쪼개지면 쪼개진 회사도 원래 주인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여당도 속도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3일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를 출범하며 상법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오기형 위원장은 민주당 코스피 5000특위 출범식에서 상법 개정안을 두고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로 SK이노베이션의 리밸런싱 전략에도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상장이 무산된 SK엔무브는 향후 배터리 계열사 SK온과의 합병이 점쳐진다. SK이노베이션 E&S는 핵심 사업 중 하나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사업을 담보로 한 자산 유동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리밸런싱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최근 자본시장 분위기와 회사 제반 사정 등을 고려해 IPO를 잠정 중단했다"며 "SK이노베이션 전략 방향성과 SK엔무브 경영 효율성을 제고하는 측면에서 최적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향후 SK그룹 계열사 상장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SK그룹은 SK엔무브를 비롯해 SK온·SK에코플랜트·SK플라즈마 등의 IPO를 추진해왔다.
SK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IPO 계획 전면 수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LS는 에식스솔루션즈, LS파워솔루션 등 계열사의 상장을 고려해왔다. 지난 3월 구자은 LS그룹 회장이 계열사 중복 상장을 두고 "문제 될 게 없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상법 개정이 현실화된다면 계열사 기업공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zzang@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