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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엔비디아 위한 국부펀드는 실패 위험 높아…개입보다 R&D 강화가 더 효과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국판 엔비디아 탄생을 위한 국부·국민펀드 결성을 제안한데 대해 이호석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 연구원은 국부펀드로 이 대표가 의도하는 효과를 내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2011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참여했던 통상 분야 전문가로 EU, 세계무역기구(WTO), 스웨덴 정부의 자본시장 규제·기업 경쟁 정책 독립 고문을 맡기도 했다.


그는 최근 아시아경제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치가 여러 차례 부패 이슈로 시끄러웠다는 점을 언급하며 국부·국민펀드 결성을 통해 특정 산업을 육성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정치 환경이라고 했다.
이 연구원은 "싱가포르 테마섹과 노르웨이의 정부연기금은 신중하고 독립적인 운용을 통해 공공 기금을 성장시킨 대표적 사례"라면서도 "(국부펀드는) 민주당이나 이 대표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공적 기금 관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 때문에 공공 펀드는 종종 국내 투자를 꺼린다"고 덧붙였다.


테마섹과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모두 정부가 100% 소유했으나, 관리 주체는 분리돼 있다.
테마섹은 싱가포르 독립 후 영국군이 남기고 간 군항과 공장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노르웨이 기금은 천연자원(주로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흑자 잉여금의 운용을 위해 출범했다.
군항, 천연자원 모두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이기에 자산의 지분은 완전히 정부에 귀속되지만, 거버넌스는 독립성을 보장 받는 위원회가 맡는다.


특히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국내 주식·인프라·부동산 등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이는 잉여금이 국내 경제에 유입돼 경기가 과열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처이자, 공공 기금이 특정 로비 그룹이나 이익 집단에 휘둘릴 가능성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테마섹도 지난 10년간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싱가포르 기업 비중을 30% 미만으로 유지해 왔다.
국내 외환보유고를 운용하는 한국의 유일한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도 한국투자공사법에 따라 위탁받은 자산을 해외에서 외화표시 자산으로 운용한다.


또 성공적인 국부펀드는 자산의 지출(국민 배분)도 엄격히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노르웨이 연기금은 매년 총자산 가치 중 최대 3% 인출만을 허용하며, 나머지는 미래 세대를 위해 모두 저축한다.



이 연구원은 "한국의 정치 구조상, 정부 펀드가 민간 기업에 투자해 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은 좋은 선택지라고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쟁 후 개발도상국 시절) 자본이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정부 투자 주도로 산업 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는데, 경제가 성장한 지금은 산업 단체와 정치인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비효율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1당 국가인 싱가포르는 공직자의 청렴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공무원에 민간 기업 이상의 연봉을 지급하고, 강력한 반부패 정책을 동원한다.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인 노르웨이 연기금은 기금 운용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 자산 투자를 제한하는 강수를 둬야 했다.


이 연구원은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 기술 기업들을 지원할 가장 적절한 방안에 대해 "한국의 자본 시장은 이미 유동성이 풍부하다"며 "여기에 정부 자본을 더 얹는 건 불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보다 기업 대출 요건, 기초 연구 지원, 근로자의 국제화 및 직무 역량 향상, 연구개발(R&D) 투자 인센티브 강화 등이 더 효과적인 정책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정치권은 'K-엔비디아 펀드론'에 들끓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민주연구원이 공개한 AI 전문가 대담에서 '한국판 엔비디아' 탄생을 위한 국부·국민펀드 결성을 제안하며 "(지분) 70%를 민간이, 30%를 국민이 나눠 가지면 세금을 거두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여당 일각에서 "사회주의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이 대표는 싱가포르 테마섹 등 해외 국부펀드 성공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이후 여야는 물론 스타트업 창업자, 벤처 캐피털(VC) 업계도 가세하며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열강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한 이상,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국가 자본의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5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그래픽처리유닛(GPU) 10만장 확보에 5조원이 든다"며 "민간 기업이 이런 대규모 투자를 감당할 수 없어 국부펀드, 혹은 새로운 국민펀드 형태로 국민이 투자하고 성과를 나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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