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가계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성장률(명목성장률) 이하로 관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가계대출이 늘어나면서 향후 규제 강도를 두고 고심할 전망이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까지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은 전달보다 5조원가량 늘었다.
2월만 놓고 보면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저금리에 가계대출이 급증했던 2021년 2월(9조7000억원) 이후 4년 만에 최대폭 증가다.
업권별로 보면 5조원 중 절반 이상인 2조6100억원가량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나갔다.
연초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서울시의 부동산 규제 폐지로 인한 강남권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한은은 작년 10월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통화정책 방향을 긴축에서 완화 쪽으로 전환했다.
이후 11월과 올해 2월까지 기준금리를 꾸준히 내리면서 경기 부진에 대응해왔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은행의 대출금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가계대출도 늘었다는 분석이다.
대출금리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지난달 12일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로 묶여있던 잠실, 삼성, 대치, 청담동 등 서울 강남권의 부동산 규제를 풀면서 가계대출이 더 많이 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보다 0.11% 올라 4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토허제 구역에서 해제된 송파구와 강남구 등의 오름폭이 두드러졌고, 비강남권으로도 상승세가 옮겨붙는 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월14일 시민 토론회에서 토허제 해제를 적극 검토하고 밝힌 이후 서울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했고, 실제 토허제 폐지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하면서 대출수요가 몰렸다는 것이다.
작년보다 가계대출 증가 속도나 규모가 더 빨라지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기본적으로 가계대출을 금융권이 자율 관리하는 기조를 정착시키고자 하지만 과도한 대출이 소비나 성장을 제약하는 등 국가 전체에 부담이 될 때는 적극 개입한다는 방향을 가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금리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가계대출 증가는 용인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과도한 증가가 나타나면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규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다.
DSR(Debt Service Ratio)이란 채무자의 모든 대출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이 연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주택 대출 외에 신용 대출, 학자금 대출 등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모두 더해 금융기관이 대출을 심사하기 때문에 보다 엄격한 규제로 꼽힌다.
은행은 대출자의 DSR이 40%를 넘지 않는 한도에서만 대출을 내줄 수 있는데 현행 스트레스 DSR 시행 이후에는 스트레스(가산)금리가 붙어서 대출이 더 축소됐다.
금융당국은 오는 7월부터 3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를 시행해 가계 대출을 조일 계획이다.
현행 2단계에서는 스트레스금리가 0.75%~1.20%인데 3단계부터는 1.50%로 올라간다.
3단계에서는 2금융권에도 은행권과 똑같이 강화된 규제가 적용된다.
또한 그동안은 대출총액 1억원 미만이거나 중도금이나 이주비 등에 쓰일 대출이라 소득심사를 하지 않았던 가계대출도 앞으로는 금융회사가 소득자료를 받아 DSR 대출 규제 관리에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이나 가계부채 추이 등을 고려할 때 DSR 제도의 구체적인 범위나 금리 수준은 변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조짐을 보이면 DSR 규제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더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 추이나 부동산 시장 상황 등을 보고 4월이나 5월 중 구체적인 DSR 적용 범위 및 스트레스 금리 수준 등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역시 5일 김범석 차관 주재로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부동산 시장 점검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한다.
이날 회의에서는 토허제 폐지 이후 부동산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대출 심사 강화 등 부동산 시장 과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 등이 논의된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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