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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지각변동]①농협 턱밑까지 쫓아온 '메기' 메리츠…금융지주 판도 바꾼다

편집자주1%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국내 금융사 간의 생존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극심한 내수 부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은행과 보험, 카드 등 전 금융권에서 혁신이 촉발되고 있으며 그 와중에서도 치열한 순위 경쟁이 나타나는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주요 금융업권에서 혁신을 통해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회사들을 집중조명하고 저성장 시대에 금융사들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고민해 보는 기획을 연재한다.

한국 최고의 부자를 꼽으라고 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 회장의 자리를 위협하는 두 번째 부자는 누구일까? 최태원 SK그룹 회장일까, 아니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일까? 아니다.
정답은 바로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다.


조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지난달 말 기준 약 12조원으로 13조원 전후인 이 회장의 평가액을 바로 뒤에서 쫓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조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5조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메리츠금융지주의 주가 상승으로 자산 규모가 일취월장하며 국내 최고 부자에 근접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빠른 실적 성장과 선진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금융권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의 현재 시가총액은 23조원으로 국내 상장사 중에 13번째로 크다.
메리츠금융지주의 주가는 작년에만 76% 급등했으며 올해도 16% 오르며 몇 년 사이에 시총 순위가 수십계단 뛰어올랐다.
금융지주 시총 순위를 보면 메리츠금융지주는 KB금융과 신한지주의 바로 뒤를 잇는 3번째다.
2월 한 때 신한지주를 넘고 2위에 오르며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다.


시가총액만 놓고 보면 17조원대인 하나금융지주와 12조원대인 우리금융지주를 한참 앞선다.
철저한 성과보상주의와 인재경영으로 경쟁이 심한 보험과 증권업에서 꾸준히 실적개선을 이뤄내는 데 성공한 데다 순이익의 50% 이상을 주주환원에 쓰는 파격적인 기업가치 향상(밸류업) 정책이 메리츠금융지주의 주가 상승 배경으로 꼽힌다.



메리츠금융지주가 전례 없는 성장을 이루자 은행업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메리츠가 은행업을 하지 않는 보험과 증권이 주력인 회사임에도 시가총액과 당기순이익에서 은행지주를 위협하는 위치까지 올라섰기 때문이다.
메리츠금융지주의 작년 당기순이익은 2조3334억원으로 5조원에 달하는 KB금융이나 4조5000억원이 넘는 신한금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5대 금융 막내인 농협금융의 2조4537억원을 가까이서 위협하는 중이다.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컨퍼런스콜에서 "향후 2~3년 내에 당기순이익 3조원을 달성할 것"이라며 "한국의 버크셔해서웨이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부회장의 예측대로 된다면 농협을 뛰어넘어 금융지주 4위인 우리금융까지도 넘볼 수 있는 위치가 된다.



5대 금융지주…은행 중심 성장전략 바꿔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기존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메리츠금융의 성장 전략에서 배울 부분이 존재한다는 평가가 많다.
은행 이자이익 중심의 기존 성장전략에서 벗어나 보험과 증권 등 비은행 사업을 키우는 시도가 이어져야 하며, 밸류업 정책 역시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작년 5대 금융지주의 실적에서 희비를 가른 것은 비은행 이익이었다.
5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연간 순이익은 18조8742억원으로 2023년 대비 10.4% 늘어난 사상 최대실적이다.
5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에서 은행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80.3%로 전년 대비 2.1%포인트 하락했다.
증권 및 보험 계열사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졌고, 사상 최대 실적의 바탕이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80%가 넘는 과도한 은행이익 의존도는 지주사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추진 중에 있다.
5대금융그룹 중 유일하게 보험 계열사가 없는 우리금융은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으려 한다.
특히 동양생명의 경우 지난해 순이익이 3100억원에 달해 우리금융이 인수에 성공한다면 은행 의존도가 내려가고 포트폴리오가 다변화하는 여러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NH농협금융지주의 경우에도 신임 이찬우 회장이 지난달 취임 이후 NH투자증권을 방문한 데 이어 곧 NH손해보험과 생명보험을 방문하는 등 비은행 계열사 다지기에 나섰다.
다른 금융지주와의 격차를 좁혀나가고 메리츠금융지주와 같은 후발주자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 비은행 계열사를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달 4일 취임사에서 "금융사는 금융과 비금융 영역의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해 공급하는 플랫폼기업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며 "기존 체계와 일하는 방식을 초기화해달라"고 혁신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구구조의 변화 및 경제성장률 둔화로 앞으로 은행 이자이익 위주의 성장전략은 지속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 비이자수익 증대, 신탁·자산운용 등 인구 고령화에 대비한 비즈니스 확대, 성장률이 높고 젊은 국가로의 진출 확대 등 근본적인 전략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5대 금융지주의 밸류업 정책 역시 강화되고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지난주 사내 인터뷰에서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통해 저평가된 주가를 회복하고 하나금융그룹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을 1배 이상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함 회장은 "현재 국내 금융지주 주가는 PBR 1배 미만에서 거래되는 등 상당히 저평가돼있는데, 이는 글로벌 은행주 대비 낮은 주주환원율이 주원인"이라며 "하나금융은 2027년까지 총주주환원율 50% 달성을 위한 주주환원의 지속적인 확대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지주 회장이 사내 인터뷰로 기업 밸류업에 대한 의지를 직접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도 지난달 12일부터 나흘간 일본 현지에서 해외 IR(투자설명회)을 진행했다.
진 회장은 일본 금융청, 일본은행(BOJ) 등에 이어 다이와증권, 미즈호, SMBC 등의 주요 투자자를 만나 안정적인 한국 금융시장과 밸류업 정책 등을 소개했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도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서 자사의 밸류업 의지를 설파 중이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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