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물꼬 텄으나 과제 여전…"10억 달러 투자" 종용받기도
관세폭탄 사정권…대한상의 이어 한경협·무역협회도 미국행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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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 19일 워싱턴 미국 의회 도서관의 토마스 제퍼슨 빌딩 그레이트홀에서 열린 '코리아·US 비즈니스 나이트'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대한상의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이 이끄는 경제사절단이 대미(對美) 통상 민간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한미 경제 소통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경제사절단에 대미 투자를 요구하는 등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재계는 관세폭탄이 본격화하는 시점까지 민간 통상 외교에 속도를 내며 트럼프발(發) 불확실성에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을 비롯해 삼성, 현대차, LG, 롯데, 한화 등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은 지난 19일부터 이틀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위 인사와 면담을 진행했다. 이들은 한국 기업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을 홍보하고, 향후 전략적 산업 협력의 필요성을 적극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안정적인 기업 활동을 위해 미 정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번 경제사절단 활동은 한미 경제 소통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탄핵 정국으로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이 이어졌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폭풍이 휘몰아치자 외교 리더십 공백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최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은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대미 통상 협력의 첫 단추를 끼우겠다는 목표 아래 미국행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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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이 이끈 경제사절단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을 진두지휘하는 러트닉 상무부 장관 등 고위급 인사와 면담을 진행했다. /AP·뉴시스 |
최 회장은 경제사절단 활동에 대해 "가능하면 미국 측이 흥미로워할 이야기를 한다는 게 계획이었고, 그런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다"며 "미국 측이 6개 분야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언급한 6개 분야는 조선과 에너지, 원자력, 인공지능(AI)·반도체, 모빌리티, 소재·부품·장비 등 한미 양국의 전략적 산업 협력이 기대되는 영역이다.
다만 이번 경제사절단을 통해 민간 차원의 대응이 한계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상견례적 만남일 뿐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 나갈 수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을 총괄하는 러트닉 장관과 면담 때도 관세문제와 관련해 뚜렷한 해법을 찾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러트닉 장관은 경제사절단과의 만남을 일방적으로 취소, 예정된 경제사절단 일정이 끝난 뒤에야 사절단 일부 인원과 만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러트닉 장관은 대미 투자를 권유하며 10억달러(약 1조4300억원)라는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된다. 또 10억달러 이상 투자하게 되면 투자를 가속화하기 위해 미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다는 점과 트럼프 임기 내 투자 성과가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트닉 장관 면담 이후 최 회장은 현지 취재진과 만나 "대미 투자를 계속 검토하겠지만 우리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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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 한경협 회장은 최근 "3월 미국 사절단을 꾸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헌우 기자 |
재계는 미국 고위 인사와의 접촉을 지속해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보편 관세에 이어 상호 관세 부과까지 관세전쟁의 사정권에 들어선 만큼, 속도를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다. 먼저 대한상의에 이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다음 달 미국 사절단을 꾸린다. 한경협을 이끄는 류진 회장은 '미국통' 경제인으로 유명하며, 불확실성 속 한미 재계의 가교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트럼프 2기 TF'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도 다음 달 '미 남부 주정부 아웃리치'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가 활성화된 애리조나, 텍사스, 테네시 등 미 남부 지역 주지사와 상무장관, 의원 등과 접촉할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각 부처에 4월 1일까지 마련을 지시한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에 한국 기업 투자가 많은 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선제 대응한다는 목적이다. 무역협회는 5월 중에도 경제사절단을 꾸려 워싱턴 DC를 방문할 계획이다.
한편, 정부 차원의 대미 채널도 조금씩 가동되고 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관세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조만간 미국을 찾는다. 앞서 안 장관의 방미를 사전 조율하기 위해 지난 17~20일 워싱턴 DC를 찾은 박종원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관세 품목에 한국 제품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산업부는 "긴밀한 소통을 통해 우리 기업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적극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