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서모(44·서울 흑석동)씨는 지인이 설 선물로 보내준 한우고기 포장지를 뜯은 후 한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선홍빛 빛깔의 한우고기가 아니라 노랗고 흰 지방 덩어리가 두드려져보였기 때문이다. 포장지를 보니 A백화점에서 보낸 등심과 불고기가 각각 한 세트씩 이었다. 등심은 떡심 주변을 중심으로 지방이 널리 퍼져 마치 돼지고기 비계를 연상케했다. 서씨는 “불고기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반면 등심은 품질이 매우 안 좋다”며 “지방을 제거하고 나면 먹을 게 별로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개(불고기)는 양호한 것을 보내고, 한 개(등심)는 낮은 품질을 보내는 게 백화점의 상술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 주부 서모씨가 설 선물로 받은 한우 등심(왼쪽)과 불고기. 등심은 떡심을 중심으로 지방이 퍼져 마치 돼지고기 비계를 연상케한다. 반면 불고기는 풀질이 양호하다. 독자 제공 | 설을 맞아 선물세트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26일 유통업계와 소비자들에 따르면 설과 추석 등 명절에는 ‘눈속임’ 선물세트 판매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선물을 보낸 의뢰인과 수취인이 어떤 제품이 배송되는지 확인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설 선물 의뢰인은 백화점에 진열된 최상급 고기를 확인한 뒤 구매를 결정한다. 그러나 의뢰인이 본 최상급 고기를 진열대에서 바로 꺼내 배송 하는 건 아니다. 배송되는 고기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외부 시설에서 제작·포장 돼 고객에게 전달된다. 백화점은 입점업체가 상품을 판매한 금액대별 수수료만 챙기는 구조다. 백화점과 고기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럼 백화점 진열대 고기는 판매용이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면 고객들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최상급만 선별해 진열한다. 지방이 많은 고기를 진열대에 올려 놓으면 고객이 구매를 꺼리기 때문이다. A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에서 선보이는 부위별 고기는 최상급이다. 최상급만 선별해 대량으로 구성할 수는 없다”며 “한우소의 크기와 체질, 근육질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씨가 설 선물로 받은 한우 고기에 크고 작은 지방 덩어리가 넓져 퍼져 있다. 독자 제공 | 전직 백화점 상품본부 관계자는 “(백화점) 입점업체가 A급과 B급 고기를 섞어도 사실상 알 수가 없다”며 “동일 가격대로 구성한 고기 선물세트 10개를 펼쳐 놓으면 모두 상품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굴비와 갈치, 전복 등 수산물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유통업체의 명절 상품이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55)씨는 “거래처에서 선물을 보내면 유통업체와 거래처에 가격을 비롯해 상품 구성과 품질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솔직히 상품에 따라 고마운 마음이 달라진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기업 등에서 대량으로 구매한 상품 구성이 취약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유통업체들은 고객이 대량으로 선물세트를 구매할 경우 상품에 따라 10~30%까지 할인을 해준다. 여기에 금액대별 상품권까지 별도로 증정한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매년 명절 때만 되면 법인 고객을 잡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마련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kh@segye.com
| <본 콘텐츠의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세계일보(www.segye.com)에 있으며, 뽐뿌는 제휴를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