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n2.ppomppu.co.kr/zboard/data3/hub_news2/2025/0120/newhub_2023040308192075532_1680477560.jpg)
"제발 '역대급', '사상 최대'는 좀 빼주세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
지난해 은행권은 사상 최대 이익을 달성하고도 기자에게 이같이 읍소했다. 실적을 올릴수록 은행권에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때문이다. 연초부터 '이자 장사' 비판을 받는 것도 모자라 금융당국과 정치권까지 합세해 '상생 금융'을 요구하고 있다. 비판은 비판대로 받으면서 '횡재세(초과이익 환수)'까지 내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생 금융 요구가 커지자 은행권 안팎에서는 상생 금융이 정례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는데, 결국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쐐기를 박았다. 주요 대선주자로 꼽히는 이 대표가 20일 5대 은행장(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을 소집하면서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지원 방안 및 가산금리 산정 체계 개편 등이 주요 주제로 논의할 예정이다.
이미 은행권은 자체적으로 상생 방안을 시행해오고 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이자 장사 비판에 은행권은 소상공인 대출 이자 캐시백 등 2조1000억원 규모의 상생 금융을 지원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시중 20여개 은행이 대출 상환 기간 연장, 금리 부담 경감 등을 골자로 한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 지원 방안'도 발표했다.
그런데 이번엔 한술 더 떠 주요 대선주자로 꼽히는 야당 대표가 은행의 자체 권한인 가산금리 산정 체계까지 손보겠다고 나섰다. 민주당은 은행권이 법정 비용이라고 주장하는 각종 보험료나 출연금 등을 가산금리에 넣어 대출자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막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은행권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산업은 당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규제산업이라 사실상 '노(No)'라고 이야기하기 힘들다"며 "올해는 은행업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데, 은행에 요구하는 사회적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어 참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은행은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오랫동안 공들여온 밸류업에도 차질을 빚게 생겼는데, 이제는 정부가 해야 할 역할까지 '상생 금융'이란 이름으로 떠맡게 됐다. 금융사 수장들은 새해 벽두부터 친필 주주 서한을 발송하는가 하면, 수시로 컨퍼런스콜을 진행하며 차질 없는 밸류업 계획을 이행해 나갈 것이란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이번에 또 '횡재세'를 납부해야 한다면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할 재원까지 털어줘야 할 판이다. 그야말로 자율은 없고 책임만 커졌다.
내일(미국 현지시간 20일)이면 트럼프 2기가 본격 출범한다. 2017년 트럼프보다 더 빠르고 센 트럼프가 온다. 정치권이 정말 민생을 걱정한다면 보여주기식 포퓰리즘 행보보다는, '트럼프 스톰'에 맞설 강한 내부 결속이 먼저다. 고군분투하는 은행에 모래주머니까지 달아야 하겠는가.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