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양자컴퓨터가 나오기까지 20년을 선택한다면 많은 사람이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월가 분석가들과의 간담회에서 양자컴퓨터 상용화 시기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런 답변을 내놨습니다. 이후 아이온큐를 비롯한 초기 양자컴퓨터 개발 기업들의 주가가 장중 폭락하는 등, 종목에 일대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양자컴퓨터 산업계는 황 CEO의 발언에 직접적으로 반박하거나, 우회적으로 지적하는 등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황 CEO의 해당 발언이 가진 의미를 서둘러 정의하기 전에, 먼저 황 CEO가 지금껏 걸어 온 인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인공지능(AI) 반도체로 성과를 맺은 그의 'GPGPU' 야심도 딱 20년 걸렸습니다.
AI 시장 장악한 엔비디아의 효자, GPG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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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그래픽처리유닛(GPU)이 현재 AI 반도체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지요. 원래 GPU는 3D 게임 그래픽 처리 반도체로 쓰였지만, 지금은 데이터센터와 슈퍼컴퓨터에 탑재됩니다. 그러나 AI용 GPU와 게임용 GPU는 사실 다릅니다. 오늘날 엔비디아가 판매하는 데이터센터 GPU의 기원은 2000년대 초반 시작된 'GPGPU' 개발 프로젝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GPGPU는 범용(General-purpose) GPU의 줄임말입니다. 즉, GPU의 업무를 일반 그래픽 처리를 넘어 다른 컴퓨팅 기능까지 확장한 컴퓨터 칩을 뜻합니다. 황 CEO의 엔비디아가 게임 산업, 특히 게임용 콘솔기기 산업과 밀착해 성장해 왔다는 배경을 고려하면 매우 대담한 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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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CEO가 GPGPU 개발로 노린 시장은 어디였을까요. GPGPU 아키텍처가 개발되던 2000년대에 머신러닝(ML)은 아직 일반인은 물론 투자자들에게도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황 CEO도 그때부터 AI 붐을 예견하진 않았습니다.
대신, 황 CEO는 GPGPU를 통해 과학, 의료, 금융 산업의 일대 변혁을 예상했습니다. 예를 들어 GPGPU는 물리, 열역학, 생물학 관련 시뮬레이션 작업에 기존 CPU 대신 투입될 수 있습니다. 혹은 대용량의 의료 이미지 및 진단기기 데이터를 처리하거나, 알고리즘 트레이딩 등 전산 금융업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됐죠. 심지어 엔비디아는 2010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협력해 차세대 군용 병렬 컴퓨팅 칩 연구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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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10여년 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GPGPU의 진짜 잠재력은 시뮬레이션도 금융업도 방위산업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엔비디아의 연간 매출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사실상 정체 구간에 있었으며, 이때 황 CEO의 GPGPU 프로젝트는 많은 비판에 직면했었습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딥러닝, 오픈AI의 대형언어모델(LLM)이 촉발한 AI 붐이 엔비디아를 '구원'해줄 때까지 황 CEO는 게임, 일반 그래픽, 가상화폐 채굴 등 수많은 산업 분야를 전전하며 GPGPU 수요를 찾아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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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보면 황 CEO의 "20년" 발언은 양자컴퓨터의 '실현 가능성'보다는 '수요'를 염두에 둔 뜻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사실,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 동향을 그 누구보다도 상세히 아는 기업 중 하나가 바로 엔비디아일 겁니다.
엔비디아의 GPGPU는 이미 양자 컴퓨팅 가속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인 '큐퀀텀(cuQuantum)'을 제공합니다. 엔비디아는 수많은 양자 컴퓨터 개발 스타트업·빅테크들과 일해 왔으며, 지금도 파트너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자컴퓨터가 실현 가능한 규모로 양산되는 것과 실제 시장에서 쓸모 있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양자컴퓨터 특유의 성질을 활용한 연산 처리 능력은 전산 암호화·생물학 시뮬레이션·데이터 트래픽 관리 등 영역에 유용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해당 시장은 아직 크지 않을뿐더러 일반 컴퓨터로도 충분히 감당 가능합니다.
물론 머지않은 미래에 양자컴퓨터의 가격 대비 성능이 엄청난 속도로 개선돼 GPGPU가 2016년부터 맞이한 구간에 돌입할 가능성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혁신 기술이 '알맞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하며, 어쩌면 황 CEO의 말대로 20년은 걸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