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힘만으로 이룬 성과가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정교한 더빙으로 해외에 재미와 감동을 온전히 전달했다.
자막을 선호하는 국내에선 간과하지만, 글로벌 흥행의 필수 요소다.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권역의 86%에서 자막보다 더빙을 이용한다.
지난해 가장 수혜를 본 콘텐츠는 '오징어 게임' 시즌 2. 최다 영어 더빙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역대 시청 수 순위 3위에 올랐다.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더빙의 힘'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자막 중심의 감상 문화를 넘어, 현지 시청자들이 자국어로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더빙 작업이 이제는 콘텐츠 수출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더빙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체계적인 작업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스트리밍 시장의 세계화를 이끄는 넷플릭스는 "더빙은 단순한 번역이 아닌, 콘텐츠 완성도를 결정짓는 창의적 공정"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프레데릭 쇼메 스페인 하우메대학교 번역학 교수는 "시청자가 배역, 배우, 성우 간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동기화가 이뤄져야 고품질의 더빙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를 '현지 제작물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기업들은 더빙에 소극적이었다.
자막 문화가 정착된 국내 시청 환경, 더빙 비용에 대한 부담, 번역·녹음·편집 간의 비효율적 작업 흐름 등이 원인이었다.
실제로 제작 초기 최종 대본조차 없이 번역이 진행되고, 교정 없이 음성이 제작되는 일이 빈번했다.
업계 관계자는 "성우들이 맥락 없이 대사를 읽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더빙을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고려하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시 최대 30개국 언어로 더빙을 지원하며, 평균적으로 하나의 작품당 10개 언어에 500명 이상의 인력을 투입한다.
더빙이 글로벌 콘텐츠 확산의 전초기지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 서울 오피스는 더빙 부서를 한국 콘텐츠 수출팀과 해외 콘텐츠 수입팀으로 분리해 운영 중이며, 수출팀은 수입팀보다 세 배 규모로 구성돼 있다.
한국 작품을 해외에 소개할 때 더빙 퀄리티를 좌우하는 핵심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최현민 넷플릭스 한국어 더빙 시니어 매니저는 "전 세계 현지 제작진과 협업하며 문화적 맥락과 창작 의도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번역과 연기를 조율하고 있다"며 "시청자들이 콘텐츠가 처음부터 자국어로 만들어진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더빙 작업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시작된다.
촬영 전 회의에 감독, 스태프, 후반 작업팀이 참여해 더빙을 염두에 둔 촬영 방식과 음향 설계를 함께 논의한다.
이후 각국 프로덕션 매니저들과 '킥오프 콜'을 통해 문화적 코드, 캐릭터 설정, 감정 표현 방식 등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 언어별 '쇼 가이드'를 제작해 현지화의 방향을 구체화한다.
한국어 더빙 또한 세심하게 기획된다.
특히 인기 시리즈에 익숙한 목소리를 지닌 베테랑 성우들을 배치해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베르사유의 장미'에는 서혜정과 엄상현 성우가, '월레스와 그로밋'에는 유해무 성우가 참여해 주목받았다.

넷플릭스는 "더빙은 콘텐츠의 문화적 장벽을 낮추는 도구이자, 글로벌 시장에서 시청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핵심 경쟁력"이라며 "앞으로도 감정 표현, 대사 각색, 사운드 믹싱까지 모든 과정을 정교하게 다듬어 콘텐츠가 세계 어디서든 공감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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