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 숨 쉬는 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신경림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유고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창비)가 출간됐다.
1956년 등단 이후 7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펼쳐온 시인은 삶의 끝자락에서 투병하는 와중에도 펜을 놓지 않았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가난한 사랑 노래) 등의 가슴을 울리는 시로 뭇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시인은 세상을 향해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란 시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2014년 '사진관집 이층'(창비) 출간 이후 11년 만의 신작으로, 이전에 시집으로 선보이지 않은 작품 60편을 엮었다.

이번 출간에는 생전 고인과 각별했던 도종환 시인이 참여해 시를 엮고 제목을 붙였다.
14일 서울 마포의 창비 사옥에서 진행한 출간간담회에서 도 시인은 "시골에서 무명 시인으로 있을 때 선생님께서 창비에서 시집을 낼 수 있게 해주셨다"며 "선생님께서 절 시인으로 키워주셨다"고 말했다.
작품 관련해선 "80대 중후의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좋은 시를 쓰셨을까 생각했다"며 "특히 눈에 띄지 않고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눈여겨 보고 드러내는 것이 시인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작은 시인의 막내아들인 신병규씨가 생전 아버지가 썼던 컴퓨터에서 미발표작을 찾아내어 발간했다.
신병규씨에 따르면 시인은 1986년쯤부터 컴퓨터를 이용해 시를 썼다.
생의 마지막 순간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글 써야 하는데"라는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고인의 시는 자칫 난해하고 개인 경험의 한계에 갇히기 쉬운 굴레에서 벗어나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 더욱 빛을 발한다.
도 시인은 "시들을 검토하면서 참 한결같다는 생각을 했다.
거창한 것을 내세우거나 허세 부리지 않고, 작고 낮은 것에 대한 연민이 참 한결같다"며 "유명하다고 해서 어깨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이웃에 대한 연민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한결같았다"고 설명했다.
시인이 나이를 먹으면 삶이 늘어져 작품에 힘이 빠지기 마련인데 고인은 그러지 않았다고도 부연했다.
고인은 생의 마지막 순간, 의식이 흐릿한 와중에도 손녀딸의 목소리에는 또렷이 반응했다고 한다.
손녀딸을 향한 사랑은 작품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신병규씨에 따르면 하루는 손녀딸의 학교 시험에 신경림 시인의 작품이 나왔는데 그만 모두 틀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에 시인은 껄껄 웃으며 시험문제를 직접 풀었는데 본인마저 틀려 모두가 함께 웃었다고 한다.
도 시인은 2012년 비례대표 국회의원 제안을 받고 고민할 당시 정치를 반대했던 고인을 떠올렸다.
"당시 한참 반대하시다가 끝에는 국회에 가서 일하되, 결국에는 문학으로 돌아오라고 하셨다"며 "그 말씀을 가슴에 새겼으나 돌아오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지난해에야 돌아왔는데 돌아와 보니 이미 중환자실에 계셨다.
많이 서운해하셨을 텐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15일 신 시인의 모교인 동국대에서는 추모 문학의 밤을 개최한다.
또한 오는 22일 1주기 당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장백문화예술재단, 신경림문학제추진위원회 등이 주최하는 신경림문학제가 충주시 노은면에서 열린다.
추모제와 학술대회 시 낭송대회, 공연 등이 펼쳐진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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