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일본 삿포로 시내에서 차로 약 40분 떨어진 곳에 거대한 불상이 있는 납골 예배당이 세워졌다.
그러나 찾는 사람이 적어 스톤헨지, 모아이상 등 시선을 끌 만한 다양한 볼거리를 도입했음에도, 건립 30주년이 되도록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2012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 해결책을 의뢰했다.
"방치되다시피 한 이 불상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오게 만들어주세요." 결과부터 말하자면 대성공이었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타다오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았다.
'이미 있는 불상을 언덕으로 덮자' '언덕을 유럽의 노트르담 드 세낭크 수도원처럼 라벤더밭으로 덮어버리자' '거대한 머리가 빼꼼히 드러나게 하자' '물이 있는 공간을 우회해서 걷게 하되, 걷는 동안 마음을 정화하게 하자' '동굴 같은 진입로에 향을 피워 멀리 보이는 불상으로 향하게 하자' '아래서 불상을 쳐다보면 동그란 하늘이 아우라로 보이게 하자.'
스튜디오 아르키 대표 김콜베(김성민)는 이 건축 설계 과정을 브랜드 구축 과정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건축이 단순히 벽돌과 철근의 조합이 아니라 방문자의 머릿속에 서사를 남기는 공간 경험을 설계하는 작업이듯, 브랜드 스토리도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닌 듣는 이가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좋은 이야기일수록 하나의 단어, 한 줄의 문장으로도 호기심을 자아내고 세부적인 이야기들이 치밀하고 탄탄하게 하위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제안하는 브랜드 이야기 설계 구조(Brand Story Architecture)는 크게 여섯 가지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브랜드명이다.
그는 브랜드명을 "브랜드가 지향하는 모든 심상과 가치들을 포괄하는 단어"라고 정의하며, 소비자가 브랜드를 처음 인지할 때 마주하는 응축된 언어이기에 매우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는 콘셉트다.
콘셉트는 라틴어 'Conceptus'에서 유래한 말로 'Con(함께)'과 'Cept(잡다)'가 결합된 단어다.
저자는 콘셉트를 "나의 브랜드가 고객들에게 던지고 싶은 수많은 심상과 가치의 다발을 하나로 묶어주는 한 줄의 문장"이라고 말한다.
이어 브랜드를 설명하는 개념으로는 '파사드' '존' '미장센' '바이브'가 있다.
파사드는 건축물의 정면 외벽을 뜻하는 말로, 브랜드의 전면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브랜드명과 콘셉트가 이름과 첫인상이라면, 파사드는 외형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단계다.
존은 브랜드를 더 세분화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미장센은 시각적 특징을 담는다.
예컨대 "갓 튀긴 도넛이 나올 때면 빨간 네온사인의 불이 켜진다"에서 빨간색은 미장센에 해당한다.
반면 바이브는 특정 공간의 분위기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미장센이 시각적인 유형 요소라면 바이브는 감성적이고 무형적인 요소에 가깝다.
예를 들어 배경음악(BGM)은 바이브를 형성하는 요소다.
저자는 이와 같은 요소들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더해져야 비로소 매력적인 브랜드가 탄생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참여한 다양한 브랜드 사례를 소개한다.
'이도맨숀'은 고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세종대왕을 콘셉트로 삼았다.
아무리 건강이 좋지 않아도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화를 냈다고 전해질 정도로 고기에 진심이었던 세종이 손님을 초대해 고기를 대접한다는 테마였다.
로고는 왕의 상징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활용했다.
이 시도는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미슐랭 가이드 빕 구르망(가성비 좋은 맛집)에도 선정됐다.
스토리텔링 기법으로는 매튜 룬이 주창한 '로그라인'을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매튜 룬은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라따뚜이' 등 픽사의 히트작을 만든 핵심 아티스트다.
현재는 포천 500대 기업에 스토리 기반 비즈니스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로그라인의 핵심은 '영웅, 목표, 장애물, 변화' 네 가지 요소를 30초에서 3분 안에 담아내는 것이다.

몬스터 주식회사를 예로 들면, 아이들 겁주기가 특기인 설리(영웅)가 아이들을 겁주는 행위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폭로(목표)하기 위해 직장에서 해고되고 친한 친구를 잃는 위험(장애)을 무릅쓰고, 의식이 깨인 몬스터로 변모(변화)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브랜드 '집무실'의 파사드에 변환해 적용했다.
"코로나가 터진 뒤 자의 반 타의 반 집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집에서 일하기 쉽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죠(장애물), 저희(영웅)는 집에서 걸어서 15분 이내 거리에 근사한 업무 환경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목표). 각자의 성향과 그날의 업무 성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워크 모듈 3종을 직접 개발해서 배치했습니다(변화)."
그는 이 문구를 집무실의 홍보 문구로 가장 오래 사용했다며, 영웅, 목표, 장애물, 변화의 구성을 활용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한 인물이 역경을 딛고 변화해 나가는 서사에 탐닉하기 때문입니다.
"
15년간 협업에서 잔뼈가 굵은, 브랜딩 실무자들에게 호평받는 김콜베의 세세한 노하우가 돋보이는 책이다.
브랜딩 개념을 콘셉트, 파사드, 존, 미장센, 바이브 여섯 단계로 구성한 BSA 개념은 바로 실무에 적용 가능한 브랜딩 공식처럼 여겨진다.
퍼스널 브랜딩에도 적용 가능한 확장성을 겸비하고 있다.
브랜드, 결국 이야기다 | 김콜베(김성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84쪽 | 1만7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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