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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숱한 실패에도…그를 1등으로 만든 건 '빠른 포기'

"배에 태워만 주신다면 무보수로 일하겠습니다.
"

훗날 동원그룹을 일군 김재철 명예회장과 바다의 인연은 굳은 집념에서 시작됐다.
수산대 재학 시절, 국내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가 출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주저 없이 승선을 결심했다.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쓰겠다며 회사를 설득한 끝에 간신히 배에 오를 수 있었다.
1958년, 그렇게 '철판 한 장 밑에 지옥을 깔고 사는 삶'이라는 바다 생활이 시작됐다.



김 명예회장이 인생의 갈림길마다 내린 선택은 종종 통념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1934년 전남 강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입학을 확정한 상황에서 "나 같으면 바다로 가겠다"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고작 뱃놈이 되겠다는 거냐"는 주변의 만류와 아버지의 못마땅한 표정을 뒤로하고, 결국 수산대(현 부경대)에 입학했다.
그는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보다는 내가 직접 답을 만들 수 있는 곳을 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바다 위의 삶은 고되고 험난했지만, 값진 배움의 연속이었다.
고기를 잡으면 배속을 갈라 먹이를 분석했고, 그 먹이가 많은 곳을 파악해 그물을 던졌다.
유독 참치를 잘 잡던 그는 선원들 사이에서 '캡틴 킴'으로 불렸다.


김 명예회장은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나로 하여금 일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최종 목표를 구체화하고, 그 목표에서 거꾸로 단계를 밟아 실행하라는 것이다.
그는 "먼 미래라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꿈꿔야 한다.
오늘의 막막함과 모호함을 이겨내는 힘은 내일의 구체성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의 목표는 '글로벌 1등 사업가'였다.
그래서 회사를 창립할 당시 '수산' 대신 '(동원)산업'이란 단어를 회사명에 넣었다.
물고기를 잡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 결과, 2008년 세계 1위 참치캔 회사 스타키스트를 인수하며 글로벌 1등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이후 원양어업과 수산물 가공은 물론, 물류 컨테이너 터미널, 축산, 가정간편식, 이차전지 소재 산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금융 부문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순이익 1조원을 돌파했다.


겉으로 보면 탄탄대로를 걸은 듯 보이지만, 김 회장의 인생은 크고 작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큰 실패는 1977년 시작한 카메라 사업이었다.
소득 증가에 따라 수요가 늘 것이라 판단해 뛰어들었지만, 기술 집약적 산업의 특성을 간과해 70억원의 손실을 봤다.
당시 회사 자본금이 30억원이었으니, 타격은 컸다.


김 명예회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업 원칙 중 하나는 '빠른 포기'다.
1등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이미 투자한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과감히 철수한다.
실제로 1973년 시작한 섬유 사업은 3년 만인 1976년 접었다.
무선호출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200억원을 투자해 진출했지만, 시대 흐름을 잘못 읽어 빠르게 철수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어느 정도 손실이 나면 과감하게 접으라고 조언한다.
투자한 것에 대한 미련으로 붙잡고 있다 더 큰 손실을 보지 말고 때를 알고 물러서라는 것. "준비에 실패하지 말되 실패의 한계선을 정하고, 안 되면 빠르게 포기해야 한다.
자신이 감수할 범위를 넘어서는 실패는 그 의미를 찾기 힘들다.
"


김 명예회장은 성공한 만큼 사회적 책무도 다하려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해양수산부 신설에 힘을 보탰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전략을 설계했다.
2006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을 맡아 태평양 도서국들을 국제박람회기구에 가입시켜, 열세였던 유치전의 판도를 뒤집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1986년 금탑산업훈장, 200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두 훈장을 모두 받은 거의 유일한 기업인이다.
"이 세상에 나와서 남에게 신세 진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갚고 간다고 생각하고 살아라"는 신념의 결과였다.


숱한 실패를 겪고도, 그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올해 아흔의 김 명예회장은 강원도에서 연어 양식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지름 28m, 높이 13m의 대형 수조 24기를 세워, 지속 가능한 단백질 공급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결실까지는 5년 이상이 걸릴 전망이다.
그는 "내가 그 결과를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의 뇌는 아직도 배고프다"며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인용했다.



이 책은 한 기업인의 성공신화이자, 굳은 의지와 뚝심이 어떤 성과를 이뤄냈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과장보다는 진심 어린 조언이 담겨 있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열정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묵직한 울림과 동력을 제공한다.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 | 김재철 지음 | 콜라주 | 240쪽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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