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30 대포·사이렌이 종소리 대체
동시성 확보 - 공시적 사회구조 강화
건축물 벽시계 등 시각적인 시보 확산
시간일치에서 관리·통제 개념으로 변화
라디오 방송은 말·행동·생각 등 통일화
시간의 연대기 - 잊힌 시간 형태의 기록/ 이창익/ 테오리아/ 4만원
![]() |
효창원 오포의 마지막 발사 장면(1924년 6월 20일). |
이 땅에서 근대적인 시간이 발아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태양력이 채용된 1896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1945년까지 50년 동안 한국에서 근대적 시간이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고 있었는지를 추적해 나간다.
아울러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어떻게 시간을 악용하고 오용하고 남용했는지를 담담하게, 그러나 선명하게 서술한다.
종은 시간 공유를 가능하게 한 가장 오래된 형태의 사물이다.
조선시대에는 통금과 새벽을 알리던 밤의 종소리, 시종(時鐘)이 있었다.
물시계로 표준시를 측정한 후 종을 쳐서 이 ‘물의 시간’을 알렸다.
물시계는 제작과 관리가 어려워 대중 보급이 불가능했다.
결국 조선시대에는 시계의 보급이 아니라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시보가 중요했다.
이를 적절히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은 종소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종은 한정된 장소에 하루 두 번 시간을 공급하면 그뿐이었다.
이 종들은 물시계가 폐지될 때까지 공식적인 ‘소리 시계’로 존재했다.
![]() |
이창익/ 테오리아/ 4만원 |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종이 융해되어 대포와 탄환이 됐다.
하지만 역으로 대포라는 무기가 일상으로 역류해 종소리를 대신하는 강력한 시간의 소리를 분출했다.
1920년대 중반 무렵엔 사이렌이 오포를 대신했다.
오포는 하루 한 번 정오에 발사되었고, 사이렌은 정오뿐 아니라 기상을 위해 아침에도 울렸다.
오포와 사이렌은 종보다 훨씬 더 넓은 공간에 시간을 공급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오포와 사이렌의 주목적은 사람들이 시보를 듣고 각자의 시계를 정확히 조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시계의 일치를 통해 시간의 힘을 키웠다.
이처럼 근대성은 동시성의 확보를 통해 공시적인 사회 구조 강화를 지향했다.
![]() |
남대문소방서의 모터사이렌. 망루에서 남대문을 내려다본 모습(1924년). |
![]() |
조선인의 궁성요배. 궁성요배는 일본 천황의 궁성을 향해 최경례를 하는 행위였다. |
경보는 궁성요배나 정오묵도의 시각을 알리는 국민의례 신호일 수도 있고, 적기의 내습을 알리는 방공경보일 수도 있으며, 화재나 수재를 알리는 비상경보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황국신민을 양성하기 위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여러 경보가 ‘시간의 소리’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개인의 시간에서 국가의 시간으로 이동할 것을 재촉하는 경보였다.
사이렌을 통해 공유되는 시간은 일상이 언제든 비상으로 추락할 수 있는 시간, 일상의 시간과 비상의 시간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1930년대가 되면 시계와 라디오의 대중 보급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져 근대적인 시간이 일상화하기 시작한다.
시계 소유는 시간을 듣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을 이리저리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문명화의 가시적 상징이었다.
앞서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하면서 라디오는 또 다른 시보 매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 |
세이코사가 제작한 ‘에키세렌토’ 회중시계(1899년). |
![]() |
경성운동장 3면 시계탑(1932년). |
근대적 시간은 공간의 근대화가 본격 전개하면서 그 지배력을 강화했다.
시계탑 등 거리 시계로 인해 해당 공간을 지나는 사람은 언제든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었고 손목시계 시간도 조정할 수 있었다.
종, 오포, 사이렌과 달리 거리 시계는 언제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각적인 시보 장치였다.
근대 건축물들은 외벽에 대형시계를 붙이고 있거나, 내부 벽에 전기시계를 걸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관공서, 우편국, 철도역, 백화점, 은행, 병원, 학교 등의 근대적 공간은 시계를 장착한 공간, 시계 시간의 질서에 편입된 공간이었다.
전기시계의 등장은 오포나 모터사이렌의 영향력 약화를 초래했다.
전기시계는 한 번 시간을 맞추기만 하면 전기의 힘으로 계속 표준시간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근대적인 시간의 초점은 이제 시계의 일치에서 시간의 통제와 관리로 차츰 이동하고 있었다.
![]() |
경기도 ‘시(時)의 기념일’ 포스터(1925년). 괘시계 그림 아래 ‘피차 시간을 려행합시다’라고 적혀 있다. |
![]() |
‘경성일보’가 1932년 7월 23일에 게재한 조선은행 앞 광장의 라디오 체조 광경. |
라디오 체조는 시보가 경보가 되는 가장 극적인 예다.
매일 아침 학교, 공원, 신사 등에 모여 서로의 몸을 하나로 조율하는 라디오 체조는 신체의 소집, 일치, 접속을 통해 집합 의식을 비등시키는 용광로였다.
라디오 체조를 통해 사람들은 매일 같은 공간에서 만나 신체의 속도와 동작을 하나로 통일하는 연습을 지속했다.
이러한 신체 통일은 궁극적으로 정신 통일을 겨냥하고 있었다.
라디오 체조는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건강한 신체, 나아가 전장의 제물로 바칠 수 있는 미래의 신체를 준비하는 식민지 국민의례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라디오 시대가 출범하자,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청취 가능한 라디오는 기존의 시공간 질서를 전복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똑같은 시각에 조선 전 지역의 모든 사람이 같은 정보를 듣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동작을 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라디오는 생각의 통일, 행동의 통일, 말의 통일을 달성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같은 시간 안에 가둘 수 있는 막강한 근대 장치였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본 콘텐츠의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세계일보(www.segye.com)에 있으며, 뽐뿌는 제휴를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