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시절 위기를 겪었던 진로그룹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
유해진·이제훈, 안정적인 연기와 믿고 보는 호흡으로 극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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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개봉한 '소주전쟁'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소주 회사가 곧 인생인 재무이사 표종록과 오로지 성과만 추구하는 글로벌 투자사 직원 최인범이 대한민국 국민 소주의 운명을 걸고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쇼박스 |
[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 유해진과 이제훈이 형성하는 다양한 관계성이 재밌다가도 지극히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은 결말에 씁쓸함이 남는다. 때로는 달게 때로는 쓰게 느껴지는 소주 한 잔과도 같아서 보고 나면 진한 숙취가 남는 '소주전쟁'이다.
지난달 30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소주전쟁'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소주 회사가 곧 인생인 재무이사 표종록(유해진 분)과 오로지 성과만 추구하는 글로벌 투자사 직원 최인범(이제훈 분)이 대한민국 국민 소주의 운명을 걸고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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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위쪽)은 회사가 곧 인생인 국보그룹 재무이사 표종록 역을, 이제훈은 오로지 성과만 추구하는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직원 최인범 역을 맡아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쇼박스 |
작품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독보적인 맛으로 전국을 평정했던 국보소주를 보유한 국보그룹이 자금난에 휘청거리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국보소주만 믿고 무리하게 계열사를 확장한 재벌 2세 회장 석진우(손현주 분)는 직원들에게 이 사태를 해결하라고만 한다.
이를 눈여겨보던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직원 인범은 국보소주 매각을 위해 회사에 접근하고 국보그룹의 재무이사 종록은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스마트한 인범에게 오롯이 의지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매일 술잔을 기울이면서 의지를 다지고 국보그룹은 로펌 무명과 솔퀸의 도움을 받아 부채 상환을 위한 5년의 유예 기간을 받는다.
그로부터 5년 후 국보그룹은 국보재팬을 매각해 남은 부채를 상환하려고 하지만 솔퀸과 인범이 회사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팔려는 진짜 목적을 드러내면서 또 다른 위기를 맞닥뜨린다. 그렇게 과거에 힘을 합쳤던 사이에서 적으로 다시 만난 종록과 인범은 회사를 지키거나 회사를 먹는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더 많은 채권단을 확보하려고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당초 '모럴헤저드'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던 '소주전쟁'은 진로그룹이 1997년 외환 위기 속 부도가 난 후 미국 투자 회사 골드만삭스에 의해 2005년 하이트맥주에 매각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티브로 했다. 실화 위에 회사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재무이사부터 오로지 성과만 생각하는 글로벌 투자사 직원 그리고 책임감보다 돈을 좇는 변호사와 판사 등 현실에 발 딛고 있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쌓아 올리면서 영화적 매력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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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진로그룹이 1997년 외환 위기 속 부도가 난 후 미국 투자 회사 골드만삭스에 의해 2005년 하이트맥주에 매각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티브로 했다. /쇼박스 |
다만 인수합병과 돈을 소재로 하는 만큼 어렵고 생소한 경제 용어가 초반부터 빠르게 쏟아져 이를 따라가기 벅차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작품의 매력과 재미는 종록과 인범 그리고 두 사람을 둘러싼 여러 인물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 먹고 먹히면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이야기에 있는데,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초반의 전개가 너무 길어 지루함을 안긴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앙상블이 이러한 아쉬움을 상쇄시킨다. 유해진은 '회사가 곧 인생'이라는 모토 아래 열심히 달리고 퇴근 후 소주 한 잔이 인생의 낙인 소탈하고 인간적인 인물 그 자체로 존재하며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다. 그는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을 치열하게 살았던 캐릭터의 희로애락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묵직한 울림을 안긴다.
이제훈은 상당히 많은 양의 영어 대사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악을 처단하는 선의 인물로 활약했던 그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번 작품으로 처음 연기 호흡을 맞춘 유해진과 이제훈은 브로맨스를 비롯한 입체적인 관계를 섬세하고 세밀하게 쌓아 올리며 기대 이상의 호흡을 보여준다.
여기에 손현주는 회사가 아닌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재벌 2세 회장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관객들의 분노를 유발하고 바이런 만과 최영준 등도 열연을 펼치며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장재현 감독의 특별 출연은 예상치 못한 웃음을 안기기도 한다.
작품은 1997년에 벌어졌던 실화를 소재로 다루면서 한 회사의 운명을 조명하는 듯하지만 위기에 놓인 시대에서 회사와 인생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물들에 더 집중한다. 그러면서 회사가 곧 인생인 삶과 회사와 인생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삶이라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지만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을 묵직하게 던진다. 이에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는 게 아닌 자꾸만 내용을 곱씹게 만드는 약간의 숙취를 함께 준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03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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