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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 충전소 대체하겠다"…피트인의 배터리 구독 서비스 도전기[디깅에너지]

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피트인(PIT-IN) 스테이션 1층. 현대 아이오닉5 전기 택시 한 대가 피트인 스테이션으로 들어왔다.
일반 전기차 충전이 아닌 배터리팩 교체를 위해 이곳을 찾은 차량이었다.


특수 제작한 리프트에 차량이 올려지자 엔지니어 2명이 능숙하게 하부에 있는 배터리팩의 볼트를 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로봇 1대가 정해진 루트를 따라오더니 차량 아래에서 해체된 배터리팩을 받아 바로 옆에 마련된 충전 랙으로 이동했다.
이때 또 다른 로봇이 충전 랙에서 충전이 완료된 배터리팩을 들고 아이오닉5 밑으로 이동했다.
로봇이 배터리팩을 정해진 위치까지 들어 올리자 작업자들은 다시 배터리팩을 신속하게 차량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처음 차량이 도착한 후 작업을 마치고 리프트에서 차량을 빼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12분. 이 사이 차주인 택시 기사는 1층 휴게소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국내 첫 전기차 배터리 교환 서비스인 피트인 안양 스테이션의 풍경이다.


이날 만난 김세권 피트인 대표는 "택시 기사들이 자주 찾는 액화석유가스(LPG) 주유소를 대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피트인은 2022년 현대차 그룹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으로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2023년 배터리 교체를 위한 지능형 리프트와 교체 로봇에 관한 특허 2건을 내고 그해 7월 독립해 바로 법인을 설립했다.


원래 현대차의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은 1년 과정이지만 피트인은 조기 졸업을 결정했다.
그만큼 성공을 확신했다.
피트인은 법인 설립과 동시에 22억원의 프리A 투자를 유치했다.


"영업용 전기차로만 서비스 국한"

피트인이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위한 '스테이션'을 처음 짓기로 결정한 곳은 안양이었다.
김 대표는 "안양은 군포, 과천, 의왕과 함께 한 권역으로 묶여 있으며 전기 택시 침투율이 높아 실증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전국의 택시 사업자 위치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지도를 보여줬다.
피트인 안양 스테이션이 위치한 만안구 주변으로 택시 법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이 소프트웨어는 피트인이 직접 개발한 것으로 앞으로 설치될 2, 3호점의 위치를 선정할 때도 이용할 계획이다.



배터리 교체 서비스는 전기차 충전에 대해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충전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전문 기업이 배터리를 안전하게 관리해준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배터리 교체 서비스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찌감치 이스라엘의 베터플레이스가 르노자동차와 손잡고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선보였으나 2013년 파산했다.
미국의 테슬라도 2013년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시범 운영했지만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해 2년 만에 중단했다.


현재는 중국의 전기차 업체인 니오(Nio), 배터리 셀 기업인 CATL 등이 공격적으로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의한 것으로 아직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국내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에서 피트인의 사업 모델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배터리 교체 서비스에 대한 부정적 전망은 다양한 종류의 배터리팩을 표준화하기 어렵다는 점, 충분한 재고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 교환소 건설과 자동화 설비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 등에서 비롯됐다.
최근 전기차 충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점도 배터리 교체 서비스에 대한 니즈에 의문을 품게 한다.


김 대표는 해외 사례를 연구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우선 서비스 대상을 일반 스용차가 아닌 상업용 전기차로 국한했다.
주행 거리가 길지 않는 일반인은 교체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많지 않다.
40만~50만㎞로 주행 거리가 길고 주기적인 충전이 필요한 영업용 전기차는 얘기가 다르다.


김 대표는 "영업용 전기차를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기존 배터리 교체 서비스와는 사업 모델 자체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배터리 교체는 단순히 충전의 대체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대표는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비싼 물건"이라며 "고가의 제품을 빌려 쓰듯 전기차 배터리도 빌려 쓰는 개념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현재 관리하고 있는 배터리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여줬다.
배터리 교체 이력, 배터리의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인 셀온도, 셀전압을 비롯해 남은 수명을 알 수 있는 SOH(State of Health)가 한눈에 들어왔다.
배터리 교체 서비스(BSS)가 이제는 '서비스로서의 배터리(BaaS)'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달부터 배터리 구독 서비스로 확대

피트인은 현재 1단계로 전기 택시 12대를 대상으로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제공중이다.
앞으로는 2단계 구독 서비스로 확대할 계획이다.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서는 전기차의 배터리를 차량 부품으로 간주해 소유권을 분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는 전기차와 배터리 소유권을 분리 등록할 수 있는 특례를 부여했다.
피트인은 특례를 활용해 현대글로비스, 배터리 재제조 기업 포엔(Poen)과 함께 7월부터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배터리의 소유권은 현대글로비스가 갖고 피트인은 이에 대한 임대료를 지급한다.
포엔은 재제조 배터리를 공급하고 품질을 보증하는 역할을 하며 그 비용은 현대글로비스가 지불한다.
피트인은 택시에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구조다.


이때 택시 사업자는 현대 글로비스로부터 배터리 가격만큼을 제외하고 전기 택시를 구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060만원짜리 택시용 기아 EV6를 1860만원(전기차 보조금 포함)에 살 수 있다.
기존보다 63% 저렴한 수준이다.
2700만원인 LPG 택시보다도 싸다.


여기에 더해 택시 사업자는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면 LPG 차량 대비 연료값도 아낄 수 있다.
김 대표는 "배터리 구독 서비스 요금은 월 140만원 정도로, LPG 차량의 월평균 연료비 160만원보다 저렴하다"며 "LPG 차보다 싸게 택시를 운영할 수 있으면 전기차로 전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피트인은 우선 30대의 전기 택시를 대상으로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점차 고객을 확대할 계획이다.
향후에는 전기 택시에 이어 화물 분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배터리 교체를 위한 재고는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
'공유'의 개념이기 때문에 차량 대수 대비 1.3배의 배터리만 확보하고 있어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30대의 전기차에 대해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분으로 9개의 배터리팩만 있으면 된다.


배터리 교체 서비스의 가장 큰 숙제는 배터리 팩의 표준화였다.
피트인은 다양한 브랜드의 차종에서도 배터리를 교환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배터리팩을 표준화하지 않더라도 로봇이 알아서 교체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피트인은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딥테크팁스(TIPS)에 지원해 선정됐다.
지능형 로봇을 개발하면 현재 배터리 교체 서비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32년까지 스테이션 250개 확대 목표"

피트인은 직영 스테이션을 4개까지 확대해 수익성을 검증한 후 대리점화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안양 스테이션 이외에 수원, 인천, 성남 등에 추가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배터리 교체 서비스의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초기 투자비를 얼마나 절감하느냐다.


1호점인 안양 스테이션은 현재까지 30억원의 투자비가 들었다.
김 대표는 "2세대 모델은 초기 총투자비를 20억원(교체 설비만 4억원)까지 낮출 수 있으며 하루에 100대를 교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30t 규모의 LPG 충전소의 투자비와 유사한 수준이다.
김 대표는 스테이션당 20%의 수익률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피트인은 2032년까지 스테이션의 수를 25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등 해외 진출 계획도 있다.


피트인 스테이션에서는 배터리 교체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전기 택시를 대상으로 멤버십을 운영하고 있다.
멤버십 카드로 충전 및 세차를 이용하고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이미 회원 수가 200명이 넘어섰다.
안양권 택시 700대의 28%가 피트인 스테이션을 이용하는 셈이다.


김 대표는 "향후 경정비, 타이어 교체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해 피트인 스테이션을 영업용 전기차와 관련한 토털 서비스로 고도화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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