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세제 혜택·보조금·전기요금 개선 등을 담은 'AI 반도체 생태계 조성 건의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삼고 반도체 산업에 전방위 지원을 추진하는 시점에 마련했다는 점에서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건의안에는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를 모두 아우르는 종합 지원 방안과 함께 주요국의 정책 흐름도 넣어 제도적 뒷받침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18일 아시아경제 취재에 따르면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최근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를 아우르는 AI 반도체 생태계 육성방안에 대한 정책 건의서 초안을 마련했다.
앞서 지난 14일 DS 부문 사장단 회의를 열어 방향을 논의한 이후 현재는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로 이관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장단 회의가 열렸던 14일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이재명 대통령과 간담회를 가진 다음 날이다.
이 때문에 새 정부가 정책 어젠다 설정에 협력을 요청하고, 기업 차원에서 산업계 현실을 반영해달라는 취지로 마련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건의서 초안에는 국가별 반도체 지원 정책 비교 분석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생성형 AI 붐과 함께 AI 반도체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부상하면서 각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례 없는 수준의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527억달러(약 73조원) 규모의 반도체지원법을 시행 중이며 유럽연합(EU)은 유럽반도체법을 통해 430억유로(약 66조원) 투자 방안을 내놨다.
일본도 2030년까지 반도체·AI 분야에 10조엔 이상의 공공 지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고 대만은 '대만형 칩스법'을 통해 반도체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대규모 지원 사례를 소개하며 AI 반도체 생태계 구축과 정책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성능 연산을 뒷받침할 전력 인프라도 건의사항에 포함했다.
일본과 대만은 전략 산업을 대상으로 탄력적인 전력 요금제나 공급망 보조 방안을 운영하는 반면, 한국은 일반 공장과 동일한 요금 체계가 적용돼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의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기술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차이도 언급된다.
미국은 엔비디아, AMD 등 전문 팹리스 기업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유기적으로 연계된 구조를 갖추고 있는 반면 한국은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에 머물러 팹리스, 설계자동화(EDA), 고성능 반도체 설계와 연계된 개발 생태계 등에서 다양성과 전문성 확보가 과제로 지목된다.
인재 확보에서도 미국은 대학과 민간이 연계한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AI 반도체 인력을 체계적으로 공급하는 반면, 한국은 기업 주도의 개별 노력에 의존하는 구조다.
삼성전자는 특히 대만 TSMC와 미국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글로벌 AI 반도체 질서 속에서, 자사의 상대적 위상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는 여전히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고성능 연산용 AI 반도체나 칩 설계와 관련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는 주도권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AI 반도체는 단일 제품이나 기술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에서 생산·운영·소프트웨어까지 이어지는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기업 단독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앞서 이 회장은 이 대통령과 만나 "투자하려던 것은 계획대로 잘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과학기술혁신펀드, AI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공공 투자 확대 기조에 맞춰 삼성도 인재 양성과 사업 체계 정비 등 내부 대응을 강화하며 정책 방향에 보조를 맞춰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는 단일 칩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 팹, 데이터센터, 인력 양성까지 얽힌 복합 생태계"라며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움직이지 않으면 미국, 대만과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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