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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좋은 정책, 나쁜 타이밍

심장 수술에서 타이밍은 기술만큼 중요하다.
맥박이 불안정하거나 혈압이 급락한 상태에서 칼을 대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산업이 그렇다.
최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언급한 "제2의 외환위기" "선진국 안착이냐 탈락이냐를 가를 국가적 대위기"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겉으로는 수주 실적이 유지되고 공장도 돌아가지만 산업 내부는 탈진 상태다.
기술은 추월당했고 수익성은 무너졌으며 투자와 인력의 기반도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주 4.5일제, 재생에너지 의무 전환, 상법 개정, 노란봉투법 등 굵직한 개혁 과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노동의 질 향상과 지속가능성, 지배구조 투명화라는 방향에는 이견이 없지만 산업이 이 모든 변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제조업의 중심인 교대근무 현장에서는 주 4.5일제가 인건비 급증으로 직결된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아직 불안정한 전력망 구조와 맞물려 생산 리스크를 키운다.
상법 개정은 정착 과정에서 경영진이 본업보다 방어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
취지는 정당하더라도 산업 현실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실적 악화와 경영 불안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현장의 우려가 정책 반대의 목소리로만 치부돼선 안 된다.
산업이 멈추면 개혁도 멈춘다.


우리 산업의 위기는 전방위적이다.
반도체는 첨단 공정과 설계 기술 모두에서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조선업은 수주잔량이 쌓여도 숙련인력이 없어 납기 차질과 위약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는 이중 압박에 시달리고 자동차 산업은 탄소중립 규제와 전기차 전환이라는 이중 부담에 흔들린다.
산업별로 양상은 다르지만 공통된 진단은 체력이 현저히 약해졌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 변화가 한꺼번에 밀려오면 산업은 미래 대응이 아니라 생존 모드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기술 투자나 글로벌 진출 같은 중장기 전략은 멈추고 현상 유지만을 목표로 한 방어에 몰두하게 된다.
단기적 안정에 쏠린 의사결정은 미래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한 재계 원로는 "매번 어렵다는 이유로 미뤄온 결과가 지금"이라고 했다.
상법 개정 등이 더 미룰 수 없는 숙제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산업이 버틸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있어야 한다.
해묵은 숙제를 풀려면 무엇보다 산업의 기초체력을 되살리는 일이 먼저다.


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확보하지 않으면 어떤 개혁도 지속될 수 없다.
정부는 산업 회복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
세제·금융·인력 측면에서 투자 여건을 복원하고 업종별 여건에 맞춘 충격 완화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동시에 개혁 이행 일정을 투명하게 제시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단기 충격을 줄이고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책도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는 결단이지만 정책은 정교한 설계다.
지금은 산업 현장에 칼을 들이댈 시점이 아니라, 버틸 수 있을 만큼 산소를 공급하고 출혈을 막아야 할 때다.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다.



박소연 산업IT부 차장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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