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덮친 기후 위기는 식탁의 풍경까지 바꾸고 있다.
주요 농산물 산지에서 예측 불가능한 날씨 탓에 작황이 나빠지고, 기업들은 공급망을 다시 짜느라 분주하다.
원가 부담을 넘어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기후 경영'이 식품업계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이유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아라비카 원두 생산국 브라질은 지난해 70년 만의 가뭄과 산불로 생산량이 20% 줄었다.
로부스타 원두의 주요 생산국 베트남 역시 가뭄과 폭염, 태풍 피해가 이어지며 수확량이 40% 넘게 감소했다.
그 결과 뉴욕 ICE 선물거래소의 아라비카 원두 가격은 1년 만에 83.7% 뛰었고, 런던 거래소의 로부스타 원두 가격도 36.5% 상승했다.
커피 원가 인상은 국내 업체들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국내 기업들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국내 A기업은 브라질 원두 가격 급등에 백방으로 새 소싱처를 찾았다.
대체 전략 소싱국으로 에티오피아를 결정하고 현지 소싱처와의 첫 거래를 진행 중이다.
에티오피아 원두는 킬로그램(㎏)당 5~6달러로 브라질(8~9달러)보다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
카카오 역시 기후 영향으로 코트디부아르·가나의 생산량이 줄자 기업들은 에콰도르로 발길을 돌렸다.
에콰도르는 지속 가능한 농법과 품질 관리로 지난해 카카오 수출이 11.7% 증가했다.
대형 급식업체들도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웰스토리는 올리브유 수입처를 이탈리아에서 스페인·튀르키예로 다변화했고, 엘니뇨로 생산 차질을 빚은 필리핀산 파인애플은 태국산으로 대체했다.
바나나는 필리핀 외에 베트남산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삼성웰스토리 관계자는 "기후 리스크는 단순한 원가가 아닌 공급망 지속가능성 문제"라고 강조했다.
공급망 재편은 수입 식자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식품 유통 현장도 변화하고 있다.
이마트는 고수온으로 광어·우럭 양식장이 피해를 보자, 충남 금산의 내륙 저온 양식장에서 키운 송어를 도입했다.
송어는 10~15도 저수온에서 자라 기후 변화 영향을 덜 받는다.
국산 갈치 어획량이 줄자 세네갈산 갈치 수입도 확대했다.
복숭아 품종도 변화가 감지된다.
이마트는 여름철 폭염과 장마에 강한 '아삭한 복숭아(아삭이)'를 기존 황도·백도 대비 대체 품목으로 확대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고온에 약한 산딸기의 산지를 경북 청도에서 충북 충주로 옮겼다.
해발고도가 높은 월악산 인근에서 일교차가 큰 환경을 활용한 것이다.
수박도 2개월 전부터 10만 통 분량을 선제 확보해 조기 더위에 대비했다.
지속된 해수 온도 상승에 김 양식도 위기다.
이에 대상은 전남 고흥에 육상 양식장을 조성하고 시험 생산에 돌입했다.
육상 양식은 기존 겨울철 해양 양식과 달리 연중 생산이 가능하다.
대상은 이와 함께 배양육 사업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었다.
배양육은 일반 육류 대비 온실가스, 토지, 물 사용량이 대폭 줄어드는 친환경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날씨 예측은 단순한 참고 자료를 넘어 기업의 '경쟁력'이 됐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려면 날씨 예측은 물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조달 전략이 필요하다.
농식품 공급망 플랫폼 '트릿지(Tridge)'는 기업가치가 3조6000억원에 달하는 대표 스타트업이다.
트릿지는 전 세계 6500여 품목의 가격, 날씨, 무역 흐름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공급망 정보를 제공한다.
200여 개국 59만 개 기업이 사용하고 있으며, 누적 거래 건수는 128억 건에 달한다.
전 세계 40여 개국에 상주하는 현지 직원이 농장 실사, 공급자 검증, 물류, 통관까지 지원해 '데이터 기반 무역'을 구현한다.
신호식 트릿지 대표는 "날씨 변화는 더 이상 일시적 변동성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리스크"라며 "식음료 산업은 기후 변화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어 '적응'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전 세계 기후 재정의 90% 이상이 탄소 감축에 집중돼 있고, 기업들이 직면한 조달 위기에 대한 기술적 대응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며, "공급망 위기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시대에 조달 전략은 데이터로 해결해야 한다"고 짚었다.
해법은 농장의 생산 방식에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최근 보고서에서 스마트팜 농가가 2023년 한 해 동안 약 1276억 원의 수익 증가 효과를 기록했고, 연관 산업을 포함한 생산 유발 효과는 7104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안정적인 생산성과 품질 제어가 가능한 스마트팜은 폭염,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에 상대적으로 덜 흔들리는 기후 대응형 농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도입 비용이 높고 흑자 전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농가 단위의 컨설팅과 품목 다양화, 전문 인력 교육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마트농업이 생산 방식 전환을 이끌고 있다면, 식량안보는 그 기반을 지키기 위한 국가 전략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0.2%, 두류는 8.8%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곡류 31.1%·미국은 72.9%, 두류 자급률도 각각 10.4%·52.0%에 달한다.
김상효 연구위원은 "기후 위기의 시대에 통상위기는 곧 식량위기"라며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곡물 수출 제한, 비축 확대, 자국 농업 보호 강화 등 전략적 전환에 돌입했다"고 강조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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