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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독일 80주년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1889∼1945) 전 독일 총통은 오로지 ‘민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가장 우수하고 위대한 민족은 역시 독일 게르만족이었다.
영국의 앵글로색슨족은 게르만족보다는 부족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민족이었다.
히틀러의 눈에 프랑스인 등 라틴족은 앵글로색슨족에 비해 열등했다.
또 소련(현 러시아)을 비롯해 동유럽 일대에 광범위하게 거주하는 슬라브족은 라틴족보다 한참 아래였다.
그런데 이 슬라브족만도 못한, 거의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민족이 있었다.
다름아닌 유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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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앞줄 가운데)와 국무위원들이 80주년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1월27일)을 기리는 뜻에서 영어로 ‘우리는 기억한다’(We Remember)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는 집권 전부터 유대인한테 적대적이었다.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 패전의 여파로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시절 나치는 ‘독일 민족에 닥친 이 모든 시련은 유대인 때문’이라는 식으로 선동하며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히틀러는 1933년 1월 독일 총리로 취임한 데 이어 1934년 8월에는 대통령까지 겸임했다.
총리와 대통령을 더한 이른바 총통(總統)의 탄생이었다.
독일의 국권을 한 손에 쥔 히틀러는 이제 유대인을 향한 적개심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939년 9월 2차대전이 터지며 독일은 물론 유럽 다른 국가에 살던 유대인에게도 암운이 드리웠다.
체코, 폴란드, 프랑스 등 나치 독일이 점령한 나라의 유대인들마저 탄압의 대상이 된 것이다.
히틀러는 한때 유대인들을 프랑스 식민지이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로 모두 추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이 계획의 실행이 불가능해지자 마음을 바꿨다.
점령지 곳곳에 강제수용소를 짓고 여기에 유대인들을 가뒀다가 가스실로 보내 살해하는 방식이었다.
2차대전 기간 희생된 유대인은 약 600만명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그중 100만명 이상이 오늘날 폴란드 영토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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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오시비엥침에 있는 옛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전경. 오늘날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바뀌어 세계 각국 시민들에게 홀로코스트의 참혹함을 알리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꼭 80년 전인 1945년 1월27일 소련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시켰다.
이를 기념해 독일 정부는 매년 1월27일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의 날’로 지정해 기린다.
올해 80주년 추모의 날을 맞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독일인들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계속해서 모든 세대에게 전달돼야 한다”며 “우리의 책임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 독일은 오는 2월23일 총선을 앞두고 있다.
‘나치의 후예’라는 평가를 받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지원에 힘입어 1당 지위를 노리는 등 상황이 심상치 않다.
숄츠의 다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독일 유권자의 현명한 핀단을 기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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