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들고 나왔던 형형색색의 응원봉은 광장의 상징이 되었다.
사실 응원봉은 그것을 들고 있던 2030 여성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응원봉은 아이돌 팬덤의 상징이다.
지금은 다양한 응원봉이 함께 있는 모습들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상징 색깔 하나로도 서로를 구분했던 이들에게 응원봉은 자신이 사랑하고 지지하는 아이돌만을 위한 것이었다.
12월3일 계엄령 선포라고 하는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인 사태 앞에서 서로가 구분되며 경계가 확실했던 응원봉들은 원래의 사용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시위가 낯설고 불안한 사람들에게 응원봉은 그들에게 친숙하고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고, 혼자 온 개인들을 ‘우리’로 만들어 주었다.
응원봉은 이제 아이돌만을 위해 밝혀지는 빛이 아니라, 불안하고 두려운 서로를 비추며 안심하게 하는 빛이 되었다.
응원봉들이 모여 만드는 다채로운 빛은 이제 광장의 다양성들을 상징하는 의미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젠더 노소할 것 없이, 농민,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여성 등 모든 억압받는 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한 세상을 위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아름다운 빛으로 보여주는 역할로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농민과 연대하고, 노동자와 연대하고, 장애인과 연대하는 응원봉의 불빛은 이제 새로운 세상에의 희망,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남태령과 한남동에서 그 추운 밤을 함께 지새우고 싸웠던 응원봉을 든 그녀들은 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뉴스에서 짧게 다루어지는 것과 달리 그들은 그저 추운 곳에서 싸우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넘어 그들은 함께 발언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동안 잘 몰랐던 사정과 법안들에 대해 공부하고 서로를 돕기 위해 현장에 지원물품을 보냄과 동시에 기부의 물결이 이어지는 등 서로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연구자로서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성장하고 있는 이 여성 아이돌 팬덤들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자각하고 나서 그들은 과거와 달리 어떤 집단으로, 어떤 삶의 방식을 지닌 사람들로 살아가게 될까. 그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돌과의 관계에서 이제는 무조건적으로 보호하는 관계가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서의 상호적 관계는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을까. 전 세계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놓인 지금 팬덤이 가진 역량들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하고 설렌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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